Agio Journal

아지오를 신는 사람들의 이야기

젊은 박사가 사회적경제를 일구어 간다.
젊은 박사가 사회적경제를 일구어 간다- 국립 경남과학기술대학 이은선 교수와의 가을 데이트 -진주에서 온 특별한 손님 목련꽃 하얀 송이가 하나 둘 봄 속에서 피어나던 날에 우리 회사로 고운 손님이 찾아 왔다. 젊은 여성이 다 늦은 저녁에 멀리 진주에서 구두를 맞추기 위해 귀한 손님으로 온 것이다.  "저는 특별한 구두를 주문하고 싶어서 이곳을 찾아 왔습니다. 남성들이 신는 정장 구두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것이었다. 아담한 체형에 발 길이도 작은 편에 속하는 여성이 남성용 정장 구두를 주문하여 우리는 조금 의아했다. 보통의 여성들이 가능하면 신발이 커 보이는 걸 꺼려하는데 무슨 이유로 남성화를 원하는지 사뭇 궁금했다. 군인도 아니고 격한 운동을 하는 스포츠 선수도 아닌데... “손님은 발이 작아 남성 구두를 맞추기 쉽지 않습니다. 남성화의 창은 길이와 넓이가 커서 손님 발에 맞춰 만들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여성 구두를 조금 커 보이게 만들어 드리면 안 될까요?”공장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절충안을 냈으나,“그럼 여성화 창에 남성화 디자인을 얹어 만들어 주세요.”라고 본인의 요구를 더 선명하게 말했다. “제가 진주에서 아지오 구두를 맞춰 신으려고 왔으니 제 부탁을 꼭 들어 주세요.”먼 데서 찾아온 손님의 부탁인지라 공장장은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의 주문을 수용하기로 했다. 어떤 신발이라도 만들 수는 있지만 이 경우에는 규격과 모양이 반비례하여 예쁘지 않을 수도 있어서 공장장이 머리를 긁적였던 것이다. 저 남녘 진주에서 잰걸음으로 달려온 특별한 손님이기에 생산부서에서는 몇 날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결국 그 구두를 만들어 보내 주었다. 어느덧 계절은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의 끝 무렵을 지나고 있다. 여러 일들과 많은 추억이 쌓이는 낙엽만큼 수북하다. 그간 아지오와 인연을 맺은 손님들의 수도 많이 늘었다. 모두가 소중하고 고마운 인연이어서 감사하는 마음이 해처럼 커졌다. 그러다 문득 지난봄에 남성화를 맞춰 신은 특별한 여성 손님이 떠올랐다. 그 구두가 잘 맞는지, 모양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주소는 국립 경남과학기술대학이었고 이름은 이은선, 신분이 경제학과 교수라는 정보를 들고 가을 고속도로를 달려 그를 만나기 위래 길을 나섰다. 특별한 손님이므로 특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이은선 교수와의 인터뷰무용을 좋아했던 은선이가... 이은선은 무용과 사물놀이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은선이가 좋아서 재미있고 즐겁게 한국무용과 사물놀이로 초․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은선이는 예고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무용인의 꿈을 실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탄탄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IMF금융 위기에 동업자들의 고의 부도와 등 돌림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면서 그 꿈을 접어야만 했다. 심한 좌절감에 빠졌지만 실패한 아버지가 신의와 성실의 자세를 잃지 않고 막노동을 해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은선이는 이를 악물었다. 가난한 고교 시절을 교과서를 몽땅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해서 틈틈이 쌓아둔 자원봉사 점수를 보태 고3 6월에 수시 전형으로 경희대 경제학과에 입학을 하게 된다. 예․체능에 대한 미련 때문에 대학 입학 후 약간의 방황과 학생운동에 참여하던 시기를 지나 논문이 지닌 힘을 깨달은 다음부터 학문의 세계로 접어드는 은선이! 고려대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하며 사회적경제가 지닌 매력을 발견하고 석사와 박사 논문 모두를 이 분야를 주제로 쓴 최초의 인물로 그 이름이 빛을 발하게 된다. 1983년생 이은선은 한국무용의 꿈을 한국의 사회적경제 분야로 승화시켜 정책의 바탕이 되는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한 젊은 학자로 우뚝 섰다. 그리고 지금은 유학파가 아닌 순수 국내 박사로 국립 경남과학기술대의 2년차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며 끊임없이 논문을 생산해내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과학 분야의 교수 임용 연령이 평균 44.8세로 나타나는데 지금의 이은선 교수의 나이는...? ​▲ 이은선 교수의 석사 및 박사학위 논문과 명함아버지의 딸 이은선 교수 이 땅에 사는 자식들 모두에게는 아버지가 있다. 좋은 아버지, 자상한 아버지, 멋있는 아버지, 무서운 아버지, 든든한 아버지, 고생하는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이 교수에게 아버지는 버팀목이며 삶의 지표였다. 어릴 적에는 유망한 중소기업 사장님이셨고, 중학시절 큰아버지라고 부르던 사람들에게 전 재산을 날렸을 때는 서슴지 않고 일용직 노동자로 가족들을 지켜 주셨다. 대학시절 이교수가 약간의 방황과 학생운동 현장에서 잠시 흔들릴 즈음, 아버지는 폐질환으로 쓰러지시며 가족들을 놀라게 했고 그로 인해 이 교수는 강한 책임감을 얻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스스로를 세워 나갔다. 그 뿐이 아니었다. 이 교수가 대학 4학년 되던 해에 아버지는 위암 판정을 받아 다시 투병생활을 이어 가야 했다. 꿈꾸던 해외유학은 언감생심, 그저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야 했던 이 교수는 더 강한 의지로 전문 분야를 파고들어 석사 과정을 무난히 마치고 나이 스물일곱에 박사 과정에 도전한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5년 투병생활을 잘 벗어나 1차 완치 판정을 받았고 그리고 5년 후에 이 교수가 박사학위를 받던 해에 아버지는 위암에서 완전히 이겨냈다는 판정을 받아 내셨다. 그간 뒤에서 눈물을 감추며 고생하신 어머니가 계셨기에 이 모두가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오늘의 젊은 이 교수는 말이 아닌 몸과 행동으로 긍정의 시그널을 선물로 주신 아버지의 딸이다. 좁은 길도 외로움 타지 않고 다른 방향에서도 근거로 맞서며 어려울 때도 물러서지 않는 뚝심이 아버지의 딸이기에 하나하나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 여겨진다.▲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아버지와 함께이은선 교수가 남성화를 신는 이유는? 이 교수는 지난봄에 특별히 주문하여 만든 아지오 구두를 자주 신는다. 여성화 창에 남성화 디자인을 얹은 그 신발이 생각보다는 잘 어울렸다. 그는, “중요한 행사나 주제 발표가 있을 때면 꼭 이 구두를 신습니다.”라고 한다. “이유가 따로 있는지...”물으니, 이공계열은 실험이나 연구 결과물을 통해 입증이나 주장이 가능하다. 그런 반면에 사회 과학은 역사성에서 각각의 현상 그리고 이념에 이르기까지 연륜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이론을 중시 여기는 경향이 농후하다. 즉 내용이나 연구 과정이 아닌 서열 중심의 풍토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젊은 이 교수는 연륜이 짧고 경험도 적은데다 여성이라는 조건에서 이런저런 차별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고 한다.  교수의 반열에 든 지금에도 왕왕 그런 일이 있어 생각을 바꾸었다고 한다. 남성복 스타일의 바지를 입고 신발은 거기에 맞춰 강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남성화를 신는다는 것이다.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되어 여성으로서 발표와 주장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이러한 현실은 이은선 교수가 더 왕성하게 활동함으로써 곧 해소되리라 믿는다. 이 교수는 가치 있는 사회적경제를 위해 가르치는 일과 더불어 학생들과 함께 현장에 나가서 사회적경제 확장을 위한 노력을 계속 해 나간다. 그리고 되도록 사회적경제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구매하는 습관을 바탕으로 그 제품들의 판매 촉진을 위한 고민도 끊임없이 이어간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목련꽃 하얀 송이가 피어날 때 진주에서 온 특별한 손님을, 아름다운 가을에 진주에 와서 다시 만나니 국화꽃 닮은 반가움과 근사하게 펼쳐질 사회적경제의 청사진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사람이 미래라는 말처럼 이은선 교수는 우리나라 사회적경제의 미래임에 틀림없다. 연륜도 경험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참신하고 역동적인 젊은 생각이 더 필요할 때다. 유명 학술지에서 각광을 받은 이은선 교수의 논문들이 이제는 착한 사회, 공정한 경쟁, 아름다운 나눔을 위해 그 역할을 해 주리라 믿는다. 또 하나의 바람은 이교수가 맵시 있고 곡선이 예쁜 구두를 웃으며 신고 다니기를 아지오 가족들이 기원해 본다.​  올 가을은 이은선 교수로 인해 무척 행복하다.​▲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정에서- 이은선 교수가 전해주는 편지:AGIO에 대한 나의 생각한참 박사과정 공부를 하던 중이었으니 2011년 아니면 2012년의 일이다. 사회적기업을 검색하다가 한 블로그에서 구두를 만드는 장애인작업장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님이 절절하게 제품을 홍보하는 글을 읽었다. 청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할 때 의사소통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구두를 만들어 오신 기술자님께 하나하나 배워가며 정성으로 구두를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작업장이 위치한 지역과 블로그의 지역은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적기업의 로고가 눈에 띄었다. 사회적기업들이 얼마나 홍보와 판로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특히 취약계층을 고용하고 계신 사회적기업들이 얼마나 힘들게 기업을 운영하고 계신지 알고 있는 나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가슴 찡함을 느꼈다. 백화점에서 판촉행사를 하는 부분이 강조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어렵게 기회를 잡으셨구나, 이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하시는구나.. 절박함이 느껴졌다. 한편으로 백화점 판촉행사에 참여할 정도면 다른 사회적기업에 비해서는 형편이 좋다고도 생각했다. 수년 뒤, 나는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 기업을 기사로 접하게 되었다. 대통령의 구두. 다른 곳에 비하면 형편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기업은 1-2년 뒤 폐업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대표님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수년 전 블로그에서 봤던 그 홍보 글이 정말 절박했던 것이었구나.. 그때 가서 한 켤레라도 살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죄송했다. 청각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어렵게 의사소통하며 기술을 배우고 그 기술로 제품을 완성했을 때 얼마나 성취감을 느끼셨을까,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 얼마나 보란 듯이 기업을 성공시키고 싶었을까..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아직도 장애인이 생산한 제품은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 브랜드가 아니면 외면하는 소비문화 때문에 이 소중한 사회적기업이 문을 닫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수개월이 지나 AGIO라는 이름으로 다시 일어섰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번에는 꼭 가서 한 켤레라도 구매하고, 또 만나서 진심으로 응원해드리고 싶었다. 내가 AGIO를 응원하는 이유는 아직도 뇌리에 박힌 "청각장애인의 꿈"라는 문구 때문이다. 어느 블로그였는지 아직도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청각장애인의 꿈"이라는 제목은 정확히 기억난다. AGIO는 단지 청각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청각장애인들이 명품을 만드는 장인으로 성장하도록 꿈을 심어주고 꿈을 키우게 하고, 꿈을 실현하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AGIO의 한분한분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고, 그 꿈이 현실이 되고 확산되어 더 많은 분들이 꿈꾸고 한발 한발 나아가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또한 AGIO와 함께, 우리사회의 수많은 사회적기업들과 함께 꿈꾸고 도전하고 싶다.  
이은선 / 교수 / 2019.11.10.
구두와 함께 울고 웃었던 50년
구두와 함께 울고 웃었던 50년-아지오의 마이다스 손, 이기노 사원과의 데이트​  망치소리와 트로트  구두만드는풍경의 사원은 모두 19명이다. 생산을 담당하는 사원 13명과 경영과 마케팅을 지원하는 6명이 열심을 다해 일한다. 스무 살 숙녀에서 일흔둘의 어르신까지 사원들 세대의 폭이 넓고 개성과 취미도 매우 다양하다. 오롯이 구두 밖에 모르는 안승문 공장장, 평소에 조용하다가도 이따금씩 버럭하는 전경수 공장장, 일찍 출근해서 궂은 일 도맡아 주는 이용만 반장, 60대 소녀 이정숙님, 엷은 미소로 마음을 보여 주는 김상진님, 말이 빠르고 몸이 앞서는 임택운님...   생산 현장에 들어서면 독특한 가죽 내음, 모양이 제각각인 발틀, 공정에 따라 놓여진 장비와 재료들, 우아한 곡선과 맵시가 아름다운 아지오 구두 여러 켤레가 부지런한 손끝에서 완성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정해숙님의 환한 인사가 반갑고, 김영길님, 조순옥님, 전수연님의 능숙한 포장 솜씨와 10층 현장에서 5층 창고를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내리는 윤석구님, 고객관리와 상품 배송을 돕는 이상무님 그리고 사무실과 생산 현장을 바삐 드나드는 경영지원부 사람들까지, 매일매일 활기와 분주함이 계속된다. 아침 회의시간은 모두 진지하지만 간식시간에는 만면에 화색이 돈다.    맞춤 수제화 아지오는 청각장애인의 사랑과 정성이 배합되어 만들어 진다. 먹는 음식이 손맛에 따라 차이가 나듯, 구두 역시 손맛이 매우 중요하다. 손으로 말하고 손으로 일하는 청각장애인들의 손맛은 좋은 구두를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장점을 가졌다. 그래서 아지오 구두가 편하고 품질이 좋기로 널리 알려진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시나요?  아침 8시 50분에 시작된 회의가 끝나면 생산 현장의 망치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따금씩 공장장의 말소리가 들려올 뿐 청각장애사원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일도 손으로 하지만 수다를 떨 때도 손으로 한다. 그런데 오전 11시가 다 될 무렵, 트로트 노래가 망치소리에 섞여 들려오기 시작한다. 분명히 청각장애사원들이 일하는 아지오 생산현장에서 나는 소리다. 살며시 다가가 귀 기울여 보니 우리 회사 최고령의 이기노님이 볼륨을 높여 놓은 트로트 음반이었다. 본인의 집안에 작은 시설을 갖추고 반주를 다운 받아 자기가 직접 노래를 불러 제작한 음반이었다. 기성 가수 못지않게 수준 높은 노래 실력을 가진 그가 왜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청각장애인들의 일터에서 트로트 노래를 들으며 아지오 구두를 만들고 있는 이기노님의 신상을 탈탈 털어 보기로 했다.시계를 72년 전으로 돌려서...  이기노님은 세는 나이로 72세다. 하지만 그의 나이는 만나는 사람과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어느 때는 73세, 우리 동료들과의 자리에서는 72세, 안승문 공장장은, " 형 나이가 74세 맞지?" 라고 한다. 탄력이 좋은 고무줄로 나이를 동여 맺는지...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으로 전북 정읍으로 피난하여 성장한 그는 여섯 살 무렵 친구들과 놀다 넘어져 왼쪽 고관절을 심하게 다치고 만다. 당시 병원이 흔치 않아 무자격 접골원에서 비과학적인 시술을 받다 1차 피해를 입었고 한의원에서 굵은 침을 잘못 맞아 좌골신경 손상으로 2차 피해를 당해 지팡이 없이는 걷기 어려운 장애를 갖게 되었다. 가난한 집안 살림이라 더 이상 어찌 하지 못하고 양 손에 지팡이를 짚어가며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지독한 가난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큰아들인 그가 장애를 가졌지만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이기노님은 곧바로 혼자 서울로 올라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노점상과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2년 후에 고향에 있던 가족들을 서울 금호동으로 불러 올렸다. 막노동을 하던 그의 아버지가 장애를 가진 아들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다져 주기 위해 추천한 분야가 구두 만드는 기술이었다. 조금 규모가 있는 양화점에서 장인에게 풀칠하는 법으로부터 숙련된 기술을 익힐 때까지 약 3년간 용돈 수준의 급여를 받아가며 과정을 통과하여 견습생 딱지를 떼게 되었다. 그 후 서울 성수동 노룬산 시장에 있던 양화점에 취업하여 짭짤하게 돈을 벌었고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에, 미싱사로 일하던 여섯 살 연하의 직장 동료에게 끈질기게 구애하여 처가의 극렬한 반대의 벽을 뛰어 넘으며 결혼에도 성공하였다.   1969년, 성남에 둥지를 틀고 부지런히 재산을 불리며 아들도 낳고 양화점도 아내와 함께 경영했다. 그러는 동안 대형 구두 메이커들이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시중에 상품을 내 놓으면서 사업이 위축되어 결국 21년 고락을 같이 했던 양화점 문을 닫아야만 했다. 뒤이어 도급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 취업하여 다시 일을 하다가 약간의 공백기를 지나 우리 안승문 공장장과의 오래된 인연으로 2018년 1월에 구두만드는풍경 최고령 사원으로 입사하여 청각장애인들과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50년 숙성된 기술과 재능을 청각장애사원들과 나누어 가지며 매우 즐겁게 아지오구두를 만들고 있다. 젊디젊은 마음으로...  이기노님이 트로트를 부르는 까닭은...?  그의 목소리는 나이에 비해 미성이다. 반주에 맞춰 부르는 그의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청순함과 흥겨움이 그대로 느껴진다. 좀 더 심취해 보면 아픔과 고생이 들어있고 견딤과 기쁨도 가슴에 와 닿는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설상가상으로 떠안은 장애, 그로 인한 친구들의 놀림들... 괴로움이 적지 않아 좌절과 포기 사이에서의 갈등이 많았으리라. 그래도 그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했고 스스로 노력하여 지팡이를 버리고 혼자 걷는 투지를 보였다. 구두쟁이의 삶에서도 부지런함과 열정으로 양화점 사장의 위치를 지켰다. 하지만 또 다른 시련의 그림자는 오랜 시간 그와 그 아내를 짓눌렀다. 건강하게 군 생활을 하던 큰 아들이 선임병의 위협과 폭행의 충격으로 우울증, 조현병, 당뇨 등의 합병증으로 20년 넘게 투병생활을 했고 그 자식을 뒷바라지 하느라 청춘이 새까맣게 타 버렸다. 3년 전에 그 아들을 앞세워 천국으로 보내고 지금은 아내와 작은 아들을 알뜰히 살뜰히 챙기며 소확행을 누린다. 주말에는 연로하신 처 고모를 보살피는 일과 아내와 맛집 기행을 하며 정을 나누고 알콩달콩 행복을 만들어 간다. 이기노님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 어린 시절 멋모르고 장애인이라 놀려대던  초등학교 동창생들과의 기분 좋은 모임이다. 남자 40명, 여자 18명 동창들이 전세버스를 타고 여행도 가고 색다른 모임을 가지면서 우정을 나누는 일이다. 서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가 트로트를 부르는 까닭은 노래로 인생을 찬찬히 추억하고픈 마음일 것이다. 고생과 아픔도 네 박자에 싣고 기쁨과 행복은 흔들고 잘 꺾어 환하게 마이크에 담아 크게 확성해 보려는 바람이라 여겨진다. 벌써 300곡에 가까운 트롯트 곡을 연습하고 다듬어서 음반에 실어 놓았다고 한다. 이 노래들이 아지오 구두 한 켤레 한 켤레에 베어 들어 고객들의 걸음과 함께 하리라 믿는다.  구두와 웃고 구두와 울었던 50년  1970년대 말에 있었던 일이다. 이기노님이 사업장 이름을 '허리우드양화점'으로 간판을 걸고 영업을 했는데 당시 우리말 쓰기 운동을 장려하던 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이 찾아 왔었다. 그 이유는 '허리우드'라는 말이 외래어이므로 우리말로 바꾸기를 권하기 위해서였다. 간판을 새로 하면 돈이 쏠쏠하게 들을 거 같아 이렇게 둘러댔다고 한다. "소의 가죽 중에 허리부분이 제일 좋아서 소 우자를 뒤에 붙여 허리우드로 지었다."라고 변명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유명 구두회사 명칭으로 간판을 걸었다가 명의 도용으로 개선명령을 받자, 역시 간판 설치비용이 아까워 '강'자를 '광'자로 살짝 고쳐 무사히 넘어간 일도 있었다. 재치와 익살이 철철 넘치기도 하는 이기노 사원!  구두만드는풍경에서의 이기노사원은 청각장애 사원들에게 구두의 기초를 가르치는 스승의 역할과 중요한 지점에서 경험적 지식을 제공하는 보험회사의 기능을 한다. 처음에는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많이 당황하는 모습을 왕왕 보았는데 이제는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사원들을 다독이며 재미있게 작업을 한다. 청각장애 사원들도 그를 잘 따르며 이렇게 저렇게 아버지를 받드는 심정으로 챙기며 호흡을 맞춘다. 구두와 함께 웃고 구두와 함께 울었던 기노 사원의 삶이 생산현장 곳곳에 묻어 있다. 무관심한 듯 하면서도, 걱정하고 야단치는 듯 하면서도 정을 주는 느낌이 전류가 되어 흐른다.   아직도 아지오가 넘어야 할 산은 높고 가야 할 길이 멀다. 방법과 비용만으로 다 해결할 수 없고 자본과 아이디어만으로도 냉혹한 시장을 이겨내기 어렵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과 고객들의 소중한 요구를 읽을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지혜가 더 많아야 한다. 하루하루 노력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며 백년을 이어갈 내공을 쌓아 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아지오는 50년 이기노 사원의 기술과 경험과 지혜를 무척 존중한다. 눈물과 웃음도 빌려 쓰고 익살과 재치도 응용하며 친구처럼 편한 구두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청각장애인들의 행복한 내일이고 고객들의 건강과 성공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기노 장인님, 앞으로 쭈욱 아지오와 함께...!​ 
이기노 / 구두장인 / 201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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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오 / 아지오 / 09.30.2019
춘천의 9월 그리고 순임씨의 가을
춘천의 9월 그리고 순임씨의 가을-찻잔에 아량을 담아 마음을 나누며 사는 정순임씨와의 데이트  한옥에 사는 순임씨 춘천시 교동 오르막에 들어앉은 아담한 기와집이 순임씨가 가을 꿈을 꾸는 보금자리다. '선운당, 운여월'이라는 문패가 붙은 나무 대문을 지나면 잔디 마당가에 각양의 화초와 식물들이 가지런하고 오는 9월이 부끄러웠는지 가지에 매달린 사과 몇 알이 얼굴을 붉히고 있다.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기역자로 자리 잡은 한옥이 참 좋아 보인다.▲ 춘천시 교동의 정순임씨 집_나무대목을 지나 ㄱ자로 자리잡은 한옥 "올가을은 제 삶에 있어 의미가 남다르답니다. 제 나이가 육십이니까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거죠." 순임씨가 귀히 여기는 차를 정성으로 우려내며 작은 찻잔에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로 담아 우리에게 건넨다. "제 어릴적 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어요. 하지만..."   경기도의 끝 강원도의 시작점인 춘천 경강마을에서 2남 3녀 중 맏딸로 태어난 그는, 열세 살 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그 꿈을 접어야 했다. 어머니 혼자 꾸려가는 가난한 살림이기에 공부를 더할 엄두를 못 냈고 일찍 공장에 취업하여 돈을 벌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큰 탓에 갈등이 많았으나 진한 신앙심으로 이겨 나갔다. 그 와중에 순임씨의 인생 항로에 변곡점이 나타났다. 어느 젊은 신학생이 전보와 편지 공세를 퍼부으며 순임씨를 신부 삼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애를 해온 것이다. 철몰라 흔들리던 소녀에게 이런 상황은 마치 숙명처럼 느껴져 남자가 좋아한다면 당연히 그 뜻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임씨는 열아홉 살 10월 28일에 때 이른 결혼을 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사랑보다 아픔이 먼저였고 바라던 행복은 혹독한 고생으로 다가와 마음에 상처를 가져다 주었다. "저의 결혼생활은 가난과 비극의 연속이었어요. 아이를 둘 낳아 기르며 계속되는 배고픈 나날도 힘겨웠지만 가정에 충실하지 않고 다른 데에 마음을 둔 남편 때문에 한숨과 눈물이 끊이지 않았어요." 결국 순임씨는 무책임하게 가정을 버린 남편과의 13년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선물처럼 잘 커준 아이 둘과 서울 어느 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 가게 된다. 낮은 목소리로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와 비우면 다시 채워지는 찻잔 속에서 그 시절의 아픔들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푸른 계절에 일구어 얻은 보물들 순임씨 인생의 봄날은 가난과 아픔 그리고 고생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견디고 해쳐서 나이 서른넷에 남편을 떨쳐 버리고 아이들과 또 다른 삶을 열 수 있었던 그에게는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맞이한 인생의 여름 이야기를 더 들어 보기로 한다.  "친정 엄마에게 2백만원을 빌려 아이들과 서울 살림을 시작했어요. 한 부모 가정이어서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는 조리사 훈련을 받을 수 있었고 남달리 좋은 기회를 얻어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에 청와대로 들어가 식당에서 일하는 기능직 공무원이 되었답니다. 고정급도 받고 임대 주택에도 입주하면서 훨씬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초등학교 6학년 딸이 탁구 국가대표가 되어 전국 대회를 휩쓸면서 덩달아 저도 대표 선수의 대우를 받는 호사를 누렸답니다." 순임씨의 지나간 봄이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 시기였다면 인생의 여름은 행복이 무성한 푸른 계절이었다. 그래서 순임씨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한적십자사가 운영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봉사활동에 참여하여 열심히 시간과 목소리를 나누어 가졌으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 많은 시각장애인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선하게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을 다 키워 놓고 마흔일곱 살에 신촌에 있는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중학 과정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여서 그런지 매일 매일이 즐거웠고 얻는 지식이 늘 새로웠습니다." 만학이었지만 설렘과 열정이 가슴 가득이어서 무려 11년에 걸쳐 대학 과정까지 멋지게 마쳤고 한자 1급 자격 취득을 넘어 문예지에 등단과 더불어 시 낭송가 활동까지 순임씨의 삶은 긍지와 보람이 주렁주렁 황금빛 열매로 장식 되었다.   ​더 근사한 이슈는 친구의 중매로 교육청 장학사로 재직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고향 춘천에 한옥을 마련하여 알콩달콩 정을 나누고 있는 풍경이다. 그야말로 인생의 푸른 계절에 온갖 보물을 소유한 큰 부자가 바로 정순임이라 여겨진다.▲ 정순임씨 마당에 자리한 사과나무와 배나무, 그리고 여러 화초들  수녀화를 건강화, 효도화라 부르면 더 좋을 텐데...  ​순임씨와 아지오의 관계는 특별하다. 구두만드는풍경의 시작이 파주였고 순임씨도 파주에 살고 있었다. 그의 장애인 사랑은 남달라서 꼭 필요할 때 조용히 힘을 보태 주면서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응원했다. 구두만드는풍경의 첫 작품은 수녀화였다.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회사를 창업하자마자 충남 공주의 어느 수녀원에서 첫 주문자로 나서 주었다. 수녀들이 많이 걷고 오래 서있기 때문에 가장 편하면서 가볍고 견고한 신발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얼핏 들으면 쉬운 요구로 들리지만 신생 회사의 첫 주문치고는 매우 어려운 요구였다. 우리 기술과 노력 그리고 정성을 모두 동원했지만 그 요구의 벽은 진짜 높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해서 다섯 번 퇴자를 맞고 천신만고 끝에 결국 수녀원에 300켤레를 납품하는데 성공했다. 이 일로 인해 우리의 기술력과 품질이 큰 발전을 얻는 계기가 되었으며 소비자의 눈높이를 읽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수녀원에서 지금의 아지오가 바로 서도록 정신적 스승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이 신발 제작에 자신을 얻은 우리는 전국의 수녀원을 대상으로 홍보 전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임씨가 푸짐하게 간식을 사 들고 우리를 찾아와 진열되어 있는 수녀화를 발견하고 한번 신어 보더니, "이렇게 편한 신발을 제가 찾고 있었어요. 허리 수술을 해서 아무 신발이나 못 신거든요. 이 신발의 이름은 뭔가요?"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대답이 "수녀화입니다."라 하니, "이 신발을 수녀화라 말고 건강화 또는 효도화라 부르면 좋을 텐데..."​▲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아지오 시즌1 건강화를 신고 소양강을 찾은 정순임님​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바를 순임씨가 걸맞는 이름을 지어 판매아이디어로 제공해 준 것이다. 그 때부터 그 수녀화는 건강화 또는 효도화로 불리었고 아지오 시즌1에서 중년 여성들에게 각광을 받는 상품이 되었다. 2010년 봄에 흐뭇하게 건강화를 구매한 순임씨는 무려 9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신발을 애용하고 있다. 새로 장만한 'AG7004' 슬립온도 애지중지하며 열심히 춘천 사람들에게 자랑한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든든하고 고마운 응원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순임씨와 아지오는 복된 인연 아름다운 관계 특별한 이웃이다. 춘천의 9월 그리고 순임씨의 가을 해질 무렵 소양강 어귀에 깃든 가을을 본다. 물빛 하늘빛이 9월이다. 남춘천역에 내린 서울 손님들이 춘천의 가을을 얘기한다. 순임씨가 사는 기와집 마루에 벌써 늙은 호박 몇 덩이가 몸을 맞대고 있다. 화초와 나무들을 쓰다듬는 순임씨의 모습에서도 가을빛이 느껴진다.▲ 마루에 놓인 꽈리와 호박들, 꽈리를 만지고 있는 정순임님​​  "처음에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차를 마시기 시작해서 지금은 한국차, 중국차, 꽃차를 공부하여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르치며 함께 차를 나누지요. 차에 어울릴 만한 한과와 떡이 필요해서 떡과 한과를 만드는 솜씨도 익혔어요." 차와 한과를 나누며 순임씨의 봄, 여름, 가을 인생 여정도 듣고... 그러다 보니 각박하고 치열한 세상사가 저만치 멀어지는 듯하다. "시를 쓰고 낭송하는 사람들이 우리 집 마당에 모여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지요. 그럴 때가 참 좋아요." 사람을 좋아하는 순임씨는 오늘도 값나가는 차와 고급스런 한과를 갖추어 놓는다. 누구라도 찾아오면 융숭하고 다정하게 아량을 담아 베풀고파서...▲​ 손수 준비한 다과상과 차를 우려 내는 정순임님​  춘천의 9월은 순임씨를 닮았고 순임씨의 가을은 춘천에서 행복하게 영글어 간다. 가을빛이 아름다우니 겨울이 와도 사랑이 따뜻하리라.  서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우리에게 순임씨가 스스로의 삶을 운유로 다듬은 시 한 편을 건넨다. 행복한 가을을 누리는 순임씨의 귀한 마음이기에 여러분과 더불어 음미하고자 한다.▲  환삼덩굴: 훼손된 들에 흔하게 자라는 덩굴성 한해살이 풀로 며느리 밑씻개 풀이라고도 한다. 잎 가장자리에 규칙적인 톱니가 있고 양면에 거친 털이 나 있다.▲ (좌) 정순임님의 환상덩굴 시화, (우) 유석영대표에게 환삼덩굴 시를 낭독하고 있는 정순임님                                                                                        
정순임 / 시와 차를 사랑하는 사람 / 2019.9.1.
어느 선생이 한여름에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어느 선생이  한여름에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애정과 지식을 버무려 후학을 길러내는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이계존 교수아지오저널 8월호는 이계존 교수가 직접 글로 써 내려간 삶의 이야기와 장애인 사랑 그리고 아지오에 바라는 마음을 함축해보기로 한다. 빈한한 아침 유산...       난 새벽에 일어나서 하루를 일찍 준비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습관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시작되었다.    장사 채비를 위해 새벽녘 집을 나서는 아버지를 마중해야 한다는 어줍지 않은 장남의 의무감에서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일찍 일어나 마땅히 할 일이 없었기에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시아방송이나 극동방송을 듣곤 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심심하면 괜히 성경책을 뒤지고 교과서 등을 훑어보기도 했다. 종내 이마저도 싫증이 나면 이런저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대학시절에도 만원버스는 너무 싫었다. 러시아워의 막히는 길, 사시사철 만원 버스에서 흘리는 땀, 이성과 밀착된 상황에서의 극도의 신경 씀 또는 자리를 두고 벌이는 날카로운 신경전 등등.난 아침 버스에서 이미 그날의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리곤 했었다. 그리하여 난 이른 새벽에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새벽 공기를 가르는 한적한 버스에서 '삼중당' 문고를 읽는 호사스런 여유를 가지며 등교하곤 했었다. 요즘에도 가능하면 새벽에 일어나 이른 출근을 한다. 뻥 뚫린 도로와 새벽의 상쾌함 그리고 여유 있게 시작하는 하루.이른 시간 도착한 학교에서 한적한 교정도 둘러보고 또 연구실에 앉아 그 누구, 그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고 보고 싶은 책을 훑어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도 하며 이른 아침 나만의 여유를 즐긴다.   누군가 수 많은 재산을 아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고 그나마도 더 큰 것을 주기 위해 편법 증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아들에게 남겨줄 재산은 무엇일까. 솔직히 부채나 떠넘기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다.  하지만 아들에게 뭔가를 남겨주고 싶은 것이 가진 것 없는 이 애비의 간절한 바램이다. 그리하여 난 아들에게 여유있는 아침을 남겨주고자 한다. 내 아버지가 내게 그랬듯이 '새벽녘에 일어나 시작하는 여유 있는 하루'를 아들에게 물려주고자 한다.지난 여름, 난 아들에게 한 가지의 과제를 요구했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이 아들놈 얼마간 잘 지키는 듯 하더니 요즘은 약간 해이해진 듯 하다. 그러나 분명 이 애비의 서글픈 유산을 소중히 지켜나가리라 믿는다.성인은 자신을 위해 쌓아두는 법이 없다(聖人不積, 노자 '도덕경'에서). 나의 황당한 합리화여!이계존의 대학시절: 내안의 큰 스승, K교수님을 그리며   1980년대 초반, 대학생으로 살아가기가 무척 힘들었다. 당시 야만성에 근거한 집권세력에 대해 분노했었다. 하지만 서슬 퍼런 정권의 폭압에 대항하여 감히 나서지는 못하였다. 그저 속앓이만 했을 뿐이었다. 반면 자신의 입신영달은 멀리하고 야만적 정권에 감히 대항하는 일부 학우들도 있었다. 이들을 보면서 난 나의 비겁함을 마냥 부끄러워했었다. 그리고 하릴없이 술집으로 향했다. 비겁함을 감추고자 하는 술로 인한 비틀거림을 교묘하게 명정(酩酊)이라 합리화하는 등, 내 학부 시절은 그다지 바람직하지만은 않았었다. 그렇지만 학부 지도교수였던 김종옥 교수님(1928~2007)은, 늘 나를 ‘우리 계존이’라 칭하며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셨다. 하루는 낮술에 취해 오후 수업에 들어온 나를 ‘우리 계존이, 어제 먹은 술이 아직도 깨질 않았구나.’ 하며 감싸주시기도 했었다.학부 졸업을 앞두고 교수님께 인사를 갔었다. 반갑게 맞이하면서 교수님은 “그래, 우리 이 선생, 졸업을 축하한다.”고 말씀하셨다. 늘 ‘계존아! 계존아!’ 하시던 교수님이 갑작스레 나를 ‘이 선생’ 이라 칭하셨던 것이다. 다소 당황해하던 내게 교수님은 짧지만 아직도 부담이 되는 강의를 해주셨다. “이제까지 넌 내 제자였기에 ‘계존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제 너도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출발하기에 당당한 나의 동료이며, 쉽지 않은 사회복지 업무를 같이 수행해야 하는 든든한 동료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부터 너를 ‘이 선생’ 이라 칭하겠다.”방황만 가득했던 나의 대학시절, 그럼에도 졸업과 동시에 날 든든한 동료로서 인정하시던 교수님의 모습은, 졸업한 지 이십 수년이 흐른 지금도 또렷이 기억된다. 돌이켜보면 교수님은 결코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업에 전념하지 않았던 나와 같은 학생들을 평가 절하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면서 그 이면의 전혀 구체화되지 못한 각자의 가능성에 주목하시고 모두에게 두루 따듯함을 보여주셨던 것이었다.  차분한 마음을 얻고자 즐겨보는 이철수선생의 판화 중 유난히 내 시선을 끄는 하나의 그림이 있다. 다소 성의가 없을 법도 한 단출한 줄기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논에서 잡초를 뽑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벼와 한 논에 살게 된 것을 이유로 ‘잡(雜)’이라 부르기는 미안하다.”​  우리 모두는 각자 충분히 아름다운 존재이다. 그러나 논이라 임의 규정된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 일부가 그저 ‘잡’ 이라 칭해지고 마침내 솎아지는 것은 분명한 야만이다. 보다 많은 소출을 얻고자 하는 욕심이 일견 이해도 된다. 그러나 논에 있다는 이유에서 스스로의 아름다움에도 부질없이 솎아져 버려지는 잡(雜)들의 아픔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선생으로서 나는 늘 하나의 다짐을 한다. 학교 또는 교실이라는 공간 규정에 천착하여 너무도 아름다운 제자들을 고루한 하나의 틀로 재단하고, 이따금 그 틀에서 어그러질 때 몰인정하게 솎아 버려지는 야만 그리고 그 야만으로 인한 누군가의 아픔이, 우리 교육공간에서는 없어야 함을.   내 다짐의 이면에 큰 스승으로 김종옥 교수님이 늘 자리하기에 난 또 한 명의 김종옥 교수이기를 갈망하고 있다.  팔불출 이계존: 바위 같은 년   참석하기 곤혹스런 교내 행사의 하나가 사은회다. 그 동안 별로 가르친 것도 없이  제자들을 척박한 실무 현장으로만 내모는 것 같다. 한켠 미안하고, 한켠 안쓰럽다. 그래서 사은회에 오라는 제자들의 초청에 난 '안 갈거다'라고 외치곤 한다.  여지없이 금년 사은회에도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저런 절차가 진행되고 사회자가 마련한 여흥은 요즘 유행한다는 다섯 단어로 묻고 다섯 단어로 답하기였다. 사회자가 질문하고 이에 교수가 답하는 형식이었다.  별스런 질문과 기상천외의 답변이 오고갔다. 그러다 내 차례가 되었다. 질문은 ‘사모님자랑’ 이었다. 이게 왠 뜬금없는 질문인지. 이런저런 말을 만들며 손가락으로 그 수를 꼽아보았다. 사회를 보던 친구가 굳이 다섯 글자가 아니어도 되니 사모님 자랑을 하라고 했다. 마누라 자랑, 화려한 것도 내세울 것도 없다. 그러나 그 든든함은 내게 큰 힘이 된다. 마치 청마 유치환의 시 마냥 '두 쪽으로 깨뜨려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 와 같다.  이런 팔불출의 자랑을 하고 난 후 난 다섯 글자로 마무리를 해야 했다. 바위같은, 네 글자까지 얘기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 '바위 같은 년'.나중에 생각해 보니 '바위같은 처(妻)' 등 근사한 마무리 말이 있으련만 그때는 '년'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바위 같은 년, 마누라는 내 이런 얘기를 듣고도 꿈쩍하지 않는다. 진짜 바위 같은 년이다.   술자리에서 진 빚, 이후 갚아야 할 빚   곱창볶음을 먹고자 마누라와 함께 수원 지동시장을 갔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곱창 가게들이 정겨웠다. 모든 집이 비슷하련만 상호가 눈에 익은 한 집을 택해 자리를 잡았다. 곱창볶음과 소주를 시켰다. 그리고 무던하게 곱창 끓기를 기다렸다. 한잔 술에 어울릴 안주가 마련되기를.그저 철판만 지켜보고 있는데, 한 노부부가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등산 후 저녁을 먹으러 왔는지 노부부도 국밥과 역시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시장통의 투박한 집이기에 모든 식탁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보글보글 끓고 있던 우리의 볶음이 다소 요란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옆자리의 할아버지가 한마디를 했다. “곱창은 당신들이 먹는데 철판이 우리 쪽에 가까워서 국물이 튈까 염려된다.”다소 시비조의 내용이었지만 할아버지의 표정은 연신 익살스러웠다. 철판의 위치를 옮기려던 나를 제지하며 할아버지는 “괜한 소리를 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 고. 잠시 동안 옆자리와 서먹한 가운데 왕후의 소주 그리고 시장통의 곱창으로 우리 부부의 만찬이 마련되었는데, 마누라는 곱창 볶음을 자그마한 앞 접시에 담아 옆자리 노부부에게 건네면서 한 마디, “어르신! 양은 많지 않지만 안주 삼아 드시라”고. 마누라의 호의는 이내 한잔 술로 화답 되었다. 할아버지 왈(曰), “국밥을 나눠줄 수는 없고, 소주 한 잔 주겠다.”며. 또 한 잔 술을 받은 나는“그냥 말 수 없다”며 할아버지에게 다시 한 잔을 드렸고. 그렇게 노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때로는 각기 서로의 얘기에 집중하며 시장통에서의 우연한 한잔을 즐겼다.술이 모자랐기에 할아버지와 나는 각기 아내의 도끼 눈, 그 눈치를 봐가며 한 병씩을 더 시켰다. 그리고 그마저도 바닥을 보이자 먼저 할아버지가 또 다시 한 병을 호기롭게 추가하려는 순간, 할머니가 끝내 자리를 박차고 나가셨다. 다소 삐친 할머니의 모습에 할아버지는 별수 없이 우리와 작별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잠시 후 할머니가 우리 자리에 오더니 한마디를 건네셨다.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그리고 “두 테이블의 술값 모두 계산했다.”고. 난 놀라며 즉시 노부부를 따라 갔다. “만일 계산을 한다면 우리가 해야지, 이건 아니다”라며. 한데 할아버지가 한마디를 하셨다. “우연히 만난 옆자리의 젊은 친구에게 한잔을 사는 즐거움이 있다”고. 그리고 “만일 이것이 부담된다면 오늘의 채무를 더 젊은 누군가에게 이후 갚으라.”고. 노부부의 호의를 통해 공짜 술의 진미를 맛보았으며, 특히 우리 사회에 팽배한 세대 간의 불편이 일순 해소됨을 느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이번 주말 ‘지동시장 곱창집’으로 가서 젊은 누군가에게 ‘빤한 수작’을 하고 이후 ‘정겨운 한잔’ 을 편하게 마시고 ‘그 술값’ 을 대신 내줘야겠다고.​​장애인 마술단 몰락사(沒落史)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장애에 대한 여전한 편견이 있다. 그 연원은 어찌 보면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과의 교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여 장애인복지 전공자로서 나는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인식 형성에 기여해야 하고, 그 하나의 전략으로서 자연스레 장애인과 아이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는 장을 마련해 줘야만 한다. 오래전부터 장애인과 아이들이 함께하는 장으로서 마술을 생각했다. 장애인이 마술공연을 하고 아이들이 이 공연을 본다면 마치 ‘마술’ 처럼 편견은 없어질 거라 기대하면서. 그리하여 몇 해 전 지적장애 십여 명 그리고 시각장애 한 명을 선발해서 마술교육을 시작할 수 있었다. 사실 마술이란 어찌 보면 교묘한 눈속임일 수도 있다. 한데 지능이 다소 모자라는 지적장애인 그리고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마술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행했었다. 힘들어하는 장애 친구들을 도닥거리며 몇 달 동안 마술교육을 계속했다. 마술사로서 현란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저 서툰 마술일지언정 이를 매개로 아이들과 교류하고자 하는 것이 우선되는 목적이었다. 힘든 교육 끝에 마침내 장애인 마술단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성남의 한 어린이집, 십 수 명의 아이들을 앞에 두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당일 올려진 마술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들이었다.   한참 공연이 진행되고 있는데 한 아이의 지적이 있었다. “나 저거 알아. 어디로 넘기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그놈이 눈속임의 비밀을 까발린 것이었다. 고약한 스포일러였다. 공연하던 지적장애 마술사가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나치게 긴장했던 친구였는데 스포일러의 개구진 한마디에 완전히 마비가 되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공연을 마치고 그 친구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후 후속 공연을 못할 정도로 마술단의 사기는 저하되었다. 단장으로서 내 고민이 시작되었다. 스포일러를 방지하며 아이들이 순진하게 마술세계로 빠져드는 전략을 찾아야 했다. 한데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더 나이가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면 될 것이었다. 이렇게 얄팍한 계략으로 이후 공연이 기획되었다. 한층 더 어린 관객들은 순진하게도 마술사의 눈속임에 충분히 현혹되었다. 그리고 공연 마술에 대해 그저 감탄사만을 연발했다. 성공적으로 공연이 종료되었다. 초연에서 긴장하고 눈물을 쏟았던 그 친구까지 모두의 입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모두가 고무된 상태로 마술 도구 등을 정리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다가왔다. 그리고 방금 전 공연을 마친 시각장애 마술사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한마디, “아저씨 나 보이지 않지. 나랑 악수하자, 악수를 하면 친구가 된다.” 천진한 한 아이의 성원에 장애인 마술단 단장으로서 내 보람이 매듭 되었다.  이후 난 장애인 마술단을 계속하기 위해 후원처를 개발하고자 했다. 중앙부처, 경기도 그리고 전문기관 등에 그동안의 성과를 이야기하며 지원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모두 허사였다. 장애인마술, 시작은 했지만 종내 계속하지 못한 나의 끈기 없음에 그저 아쉬웠던 하나의 기억으로만 남았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모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한데 너무도 익숙한 한 친구가 마술을 공연하고 있었다. 가장 초보의 마술이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기에 지켜보는 사람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공연 이후 진행자가 물었다. “마술은 어디서 배웠냐?”고. 그는“오래전 한 기관에서 장애인 대상의 마술교육이 있었는데 그때 배웠다.”고 답했다. 그는 내가 단장이던 그 마술단의 단원이었다. 그리고 한 아이와 친구가 되자며 악수를 나누었던 바로 그 시각장애 마술사였다.방송에서는 그의 바람도 소개되었다.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 마술사로서 마술을 계속하겠다. 그리고 신체 분리의 마술을 배우고 싶다.” 마침 패널로 출연한 유명 마술사가 멘토로 마술을 가르쳐 주기로 약속했다. 내가 시작했던 그 일, 주변의 지원이 없어 중단했던 그 일, 그 일을 나의 클라이언트였던 친구가 외로이 계속하고 있었다. 든든한 친구다. 고맙다.우리나라 장애인복지의 든든한 뿌리  “장애아는 사회에서 격리시켜라(플라톤)”, “장애아를 양육하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라(아리스토텔레스)” 등 장애인에 대한 비인격적 인식과 가혹한 처우는, 놀랍게도 서양 철학의 초석을 다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 주장이었다. 이와 같은 장애인관은 중세에 최악의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장애인을 ‘신에게서 벌을 받은 사람’ 또는 ‘자신들과는 다른 신을 섬기는 괴물’로 규정하여 비장애인과 엄격하게 분별하였다. 심지어 장애인을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지르면서 “너희가 모시는 신이 있다면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대심판의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  서양과 달리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장애를 질병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는 등 체계적인 장애 개념을 구축하여 왔다. 즉, 위독한 질병을 ‘독질(篤疾)’, 몸에 남은 질병을 ‘잔질(殘疾)’ 그리고 고칠 수 없는 질병을 ‘폐질(廢疾)’로 구분하였다. 또한 이러한 구분하에 각각 상태에 따른 치료 및 복지 시책을 제공하였다. 조선시대 시행된 대표적인 장애인 대상의 복지 시책은 다음과 같다. ① 장애인 및 그의 가족에게 각종 부역과 잡역의 면제, ② 장애인 학대나 살해의 경우 가중 처벌, 또한 이러한 경우 해당 고을의 읍호 강등 등 집단 책임 강조, ③ 점복, 독경, 악공 등 잔존능력을 고려하여 관직 등의 일자리 창출, ④ 명통시(明通寺) 등 장애인단체 운영 및 지원.  서양의 경우 장애인을 보는 초기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인권과 복지에 대한 의식의 진전 그리고 전쟁이나 산업재해 등을 통해 양산된 다수 장애인에게 보상적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이 확대되면서 장애인복지가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왔다.   반면 우리나라는 장애인 인권 존중 및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혜택 등의 전통적 기반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되었고,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목표 달성과 속도만을 중시한 결과 대부분 상실되었다. 돌이켜 ‘뒤’를 보는 역사의식, 그리고 따듯한 시선으로 ‘옆’을 보는 연대ㆍ복지의식 등이 결여된 채, 그저 ‘앞’만을 편향적으로 바라보는 압축성장기를 거치면서 장애인은 점차 소외되고 소극적 존재로 전락하여 왔다.   무조건 외국의 제도만을 쫓지 말고, 우리 안에 있었던 든든한 뿌리를 다시금 확인하고, 이제라도 되살리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유대표 그리고 아지오에 대한 기대   유석영대표가 아지오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친구로서 난 반대를 했었다.   반대의 변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대통령의 구두에 대한 언론 보도 등으로 상당 관심이 일었지만 그 지속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라는 것. 중국산 중저가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시장에서 다소 고가인 수제 구두의 수요는 제한적이라는 것. 그리고 다양한 신발을 착용한다는 요즘의 소비 형태를 고려할 때 고급 신사화나 숙녀화의 재구매 주기가 매우 길다는 것 등등. 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 대표는 고집스레 아지오를 다시 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뛰고 있다. 그러기에 친구로서 난 누구나 할 수 있는 반대 그리고 부정적 전망보다는 그에게 또 아지오에 대해 이런 흐뭇한 기대를 하게 되었다. 아지오가 직접 구매 예상자에게 마케팅을 할 수 있다. 누군가 제3자가 아지오의 탁월함을 PR할 수도 있다. 또는 지속적으로 아지오의 구매를 매체를 통해 광고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기대하는 것은 이러한 마케팅도, PR도, 광고도 아니다. 바로 브랜드로서 아지오의 정립이다. 없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떨어지고 헤져서 사는 것도 아니다. 또 다른 제품보다 더 좋아보여서 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사는 것이다.  그냥 아지오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자존감을 가지게 되는 브랜드의 경지이다.   브랜드로서 이지오의 정립은 분명 어려운 과업이다. 그러나 내 친구 유대표 그리고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아지오의 식구들이 있기에 반드시 달성될 과업이다.
이계존 / 교수 / 2019.8.1.
손으로 만들어가는 아지오 세상
손으로 만들어가는 아지오 세상   두 번째 맞이하는 아지오의 여름 ▲ 2019 아지오 직원 워크숍-제주도​벌써 여름이다. 칠월이 덥다. 푸르름이 가득이다. ​문을 다시 연 구두만드는풍경이 두 번째 여름을 맞는다.갖춘건 없는데 풀어야 할 숙제는 아직도 넘친다.​부지런 떨며 열심히 일했는데 주머니는 가볍다. ​▲ 열심히 구두를 만들고 있는 아지오 직원들​틈만 나면 도망치는 시간을 붙잡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그래도 다행인 건 아지오와 친한 사람이 많아졌다.만드는 구두의 가짓수도 늘어서 제법 잘 팔린다.​욕심대로라면 얼른 부자 되어 어엿한 기업으로 성공의 깃발을 꽂고 싶은데...차디찬 시장이 호락호락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여름 하나가 가더니 덤벙대는 사이에 금새 또 하나의 여름이 왔다.벌기 무섭게 나가는 돈 챙기느라 청포도 익는 줄도 몰랐다.섭섭하면서도 허무하고 흐뭇하면서도 아쉬움이 적지 않다.그래서 오늘은 잠시 숨을 고르며 편하게 아지오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모두가 '아지오 매거진' 초대 손님이 되어 마음을 나누기를 주문해 본다.우리 함께 두 번째 아지오의 여름 속으로 들어가 보자.   대통령의 구두에서 시민의 구두로, 시민의 구두에서 친구보다 더 좋은 구두로... ​아지오의 시작은 정말 단순했다. 솜씨 좋고 능력 많은 청각장애인들의, 행복한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잘 만들어 열심히 팔면 그 목적은 달성되리라 생각했다.  ▲ 아지오 시즌1 시절​하지만 전쟁터와 같은 시장은 결코 아지오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유목민처럼 행상하며 이곳 저곳 찾았으나 역부족임을 실감했다.결국 더 이상의 빚더미를 짊어질 힘이 없어 펑펑 울며 문을 닫아야만 했다.2012년 9월에 국회에서 손님으로 만난 문재인 후보!​서슴치 않고 한 켤레 사 신고 무척 기뻐하시던 그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밑창이 갈라지도록 신었다는 소문이 아지오의 부활을 견인했다.그 때부터 아지오는 '대통령의 구두' 아니 '문재인 구두'로 별명을 얻었다.      ▲ 2019.3. 11. 말레이시아 순방 때 아지오 7005 블랙&화이트를 신은 김정숙 여사님  ▲ 문재인대통령께서 주문한 아지오 구두를 전달하는 유석영 대표 ​그 구두가 시민의 구두로 이어진데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아지오 사랑 때문이다.시즌1에서 모델로 나섰고 시즌 2의 문을 함께 열며 주 모델로 다시 등장하셨기에...지금은 시민의 구두가 그 편안함으로 인해 친구보다 더 좋은 구두로 이어지고 있다.물론 그 바탕에는 50년 구두 장인의 출중한 기술력이 배어 있다.그와 더불어 청각장애인들의 손 끝에서 나오는 정성과 섬세함도 들어 있다.아지오가 두 번 여름을 맞으며 고객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역시 대통령의 구두요 시민의 구두이며 친구보다 더 좋은 구두이다.온 세계가 깜짝 놀란 기쁜 소식 하나...!판문점에서 이루어진 첫 남북미 정상 만남에 구두만드는풍경이 큰 박수를 보낸다.지금부터는 우리 아지오가 통일의 구두로 그 역할을 다해 주기를...       ▲ 아지오 모델이 되어주신 유시민 작가님 ▲ 아지오 드레스 1001 브라운, 1002 블랙, 슬립온 4001 네이비   부조화 속의 조화 ​구두만드는풍경의 대표는 시각장애인이다.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청각장애인들이가.안 보이는 CEO와 안 들리는 기술인이 한 솥밥을 먹는다.이러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아지오에 대한 염려가 크다.어떤 방법으로 소통하며 어떻게 구두를 만들어 내느냐는 것이다.​정작 우리는 아무 문제 없이 명품 아지오를 척척 만들어 낸다.​불편하고 더딘 부분은 있으나 오해와 불신은 거의 없다.오히려 더 분명하게 묻고 더 충분하게 확인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는다.사회적협동조합 구두만드는풍경의 조합원은 36명이다.상시근로인은 청각장애인 10명, 지체장애인 1명, 시각장애인 1명, 비장애인 6명이다.현재 생산하는 구두모델은 31종 70여 색상별 제품이 수제화로 제작된다.판매망은 '아지오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엘롯데', 'CJ O쇼핑 등에서 판매한다.현재 발을 직접 실측하여 아지오를 구매한 고객의 수는 7천 여 명에 달한다.또 하나의 아지오 파워가 있다. 모델료로 구두 한 켤레를 받고 순수하게 재능을 내 준 사람들이다.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님, 유희열 대표님, YTN 변상욱 대기자님, 이상순님-이효리님 부부, CBS 김현정 앵커님, 의리 탤런트 김보성님, 아나운서 최선규님, 개그우먼 김지선님...안 보이는 CEO와 안 들리는 기술인의 결합은 결코 부조화가 아니다.그야말로 부조화 속의 조화, 환상의 콤비이다.▲아지오의 모델들손으로 만들어 가는 아지오 세상  ▲ 수어로 노래하는 아지오 직원들아지오는 손으로 사랑을 말하고 손으로 꿈을 꾼다.큰 소리도 귓속말도 아닌 손으로 정직을 이야기한다.고객들의 발에 꼭 맞도록 일일이 손으로 어루만지며 구두를 만든다.돈의 크기보다 사람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긴다.아지오는 좋은 구두이므로 신는 사람들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우리들의 손은 정직하고 건강하기에 좋은 구두를 만들 수 밖에 없다.고객들로부터 받은 애정을 선하게 되갚아야 하기 때문이다.이 여름 뜨거운 날에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꾼다.참된 생각을 손에 담아 자유와 평등이 범람하는 아지오 세상을 만들 것이다.조금이어도 나누고 모자라도 베풀며 더 어려운 곳에 먼저 달려갈 것이다.이제부터는 손으로 만들어가는 아지오 세상을 많이 기대해도 좋다.말보다는 손이 실천하는 힘을 더 많이 갖고 있으므로...
구두만드는풍경 / 맞춤형 수제 구두를 만드는 사람들 / 2019.7.1.
신록이 아름다운 평창에서 오십대 소녀를 만나다.
신록이 아름다운 평창에서 오십대 소녀를 만나다-주는 사랑보다 받는 사랑이 더 많은 김현미 사회복지사와의 데이트-     '다소니'에서 꿈을 꾸는 사람들 ▲ 참신한 아이디어로 꿈의 크기와  빛깔을 새롭게 다듬어가는 오십대 초반의 소녀 김현미 사회복지사명품 아지오가 6월의 신록을 따라 강원도 여행에 나섰다. 찐빵이 유명한 안흥을 지나 평창 방림면 계촌리에 당도하니 길 따라 늘어선 계수나무들이 푸른빛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이 마을에 우리 구두만드는풍경 이선우 이사가 운영하는 장애인거주시설 '다소니'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3월에 '다소니' 식구들이 우리 회사를 방문하여 수제화가 만들어지는 모습도 보고 직접 발 크기를 재어 맞춤 아지오를 장만했었다. 혹시라도 수선이 필요하거나 다른 불편한 점이 있을 수 있어 아지오가 출장을 겸하여 이곳으로 반나절 여행을 온 것이다.'다소니'라는 뜻이 순수 우리말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이름처럼 집도 예쁘고 주변 풍광도 참 좋다. 그 뿐 아니라 30명의 장애이용인과 25명의 직원들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정을 나누며 알토란같은 꿈을 키워가는 일상이 온통 행복으로 느껴졌다. 그런 '다소니' 사람들이 아지오가 대통령의 구두이며 청각장애인들이 손으로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우리에게 먼저 손짓을 해 주어 구두만드는풍경 사원 모두는 크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사 신기도 하고 사위와 아들에게 선물하는 사람, 아내와 남편에게 사랑의 선물로 전달하는 고객들도 있었다. 특히 발이 작거나 변형의 정도가 큰 장애 이용인들의 관심도가 높았다.​▲ 다소니 가족들이 아지오 구두를 신고 퍼포먼스를~~^^그 가운데 아주 오래 전부터 아지오를 알고 그 가치를 존중하며 본인도 한 켤레 사 신고 대학원을 졸업하는 아들에게도 한 켤레를 선물한 사회복지사 김현미 주임을 만날 수 있었다. '다소니'에서 여성장애인들의 생활 지원을 담당하며 참신한 아이디어로 꿈의 크기와 빛깔을 새롭게 다듬어가는 오십대 초반의 소녀였다.   잠깐! 이 즈음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자.현미씨와 다소니 사람들의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현미씨와 마주 앉아 의미 있는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잘 엮어서 아지오 매거진 6월호를 꾸며 보기로 했다.▲ ‘다소니’에서 유석영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현미 사회복지사​현미씨가 처음 만난 아지오   "저는 아지오 시즌1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무슨 이유로 시작해서 어떤 방법으로 일을 했으며 왜 폐업했는지도 대략은 알고 있었습니다."현미씨의 얘기와 표정을 보았을 때 그냥 조금 아는 정도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아지오의 성공을 바라며 마음속으로 애지중지 했고, 기회가 되면 반드시 아지오 구두를 사 신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미씨가 아지오 구두를 사 신으려 했을 때에는 이미 구두만드는풍경이 폐업한 뒤였다. 결국 아지오 구두를 마음에만 담고 지내오던 현미씨였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아지오 구두를 발견했다. 2015년 어느 신발코너에서 선명하게 'AGIO'라고 새겨진 상표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한 켤레를 구입했다. 그의 짐작은 아지오가 폐업하면서 남은 제품을 내 놓은 거라 여겼었다. 그러나 그 구두는 인천에서 구두를 생산하던 P씨가 바람직하지 못한 상술로 장애인을 폄하하며 짝퉁 아지오를 적지 않게 시장에 풀어서 판매되었던 신발이었다. 우리 구두만드는풍경이 폐업의 아픔도 컸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적지 않은 충격과 상처를 입었었다. 하필이면 현미씨와 아지오의 첫 만남이 짝퉁 아지오였다는 사실에 속도 상하고 입맛도 씁쓸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즌2로 부활한 아지오는 현미씨에게 큰 기쁨이요 희망이었다. 그래서 작정하고 본인의 구두를 얼른 사 신고 아들의 졸업 선물로도 아지오를 기쁘게 선물했다. 그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드는 생각 하나는, 소녀 김현미와 아지오가 꿀이 뚝뚝 떨어지는 관계를 오래오래 이어가기 위해 우리 사원들이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저는 아지오의 새로운 디자인이 탄생하거나 좋은 소식을 전해들을 때면 그 어떤 기쁨보다 이 기쁨이 큽니다. 제게는 그 의미와 가치가 소중하고 그 편안함이 좋기 때문이지요."▲아지오 구두를 신고 모델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현미 사회복지사~^^오십대 소녀 김현미!   "저는 어릴적 생각이나 지금의 생각이 언제나 같습니다. 몸이 크고 나이가 먹었을 뿐, 생각은 늘 같답니다." 자신을 위해 고민하고 많이 명상하며 스스로를 정중동으로 가꾸어 가는 그를 읽을 수 있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혼자 고생하신 어머니와 사춘기마저 가사를 돌보느라 겪을 시간조차 갖지 못했던 현미씨, 스물셋 젊은 나이에 결혼하여 아이 셋을 키우며 산후 우울증과 내적 갈등으로 뒤늦게 맞이한 현미씨의 사춘기... 39세에 가슴에 담아둔 학업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고 오십이 넘은 지금에는 사회복지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김현미로... 그리고 인생 후반전은 남편과 함께 천진스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 위해 또 다른 준비를 차곡차곡 해가는 리더 김현미!"저는 상상을 잘하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일도 좋아하며, 자신감을 갖고 걷기를 즐겨하며, 새롭게 시도하는 일을 끊임없이 합니다." 현미씨가 어릴 때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같다고 말하는 것은 가난과 갈등을 미리 경험하며 일찍 철이 들어버린 탓이라 여겨진다. 요동치지 않고 스스로 이기는 법을 익혀서 위기와 문제를 침착하게 풀어 왔기에 지금도 소녀처럼 꿈을 만지며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뭔가를 시도하려 한다. 요새는 지역과 국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며 되도록 참여의 기회를 만드는 일에도 시간을 쓴다는 현미씨!"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목적지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걸어서 정한 곳을 가기 위해서 신발을 신겠지요. 저는 아지오를 신을 때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곳을 가고자 노력합니다."김현미 사회복지사가 아지오의 존재 의미를 다시 일깨워 준다.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소통하고 그림 그리는 사람은 그림으로 소통하듯 관심과 애정을 풍부하게 지녀서 주변과 아름답게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현미씨가 진정한 사회복지사로 다가왔다.▲ 신록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6월의 평창에서초록빛 아름다운 평창에서 소녀 김현미씨와 긍정을 나누어 가져 매우 흐뭇했다. 추구하는 바와 지닌 꿈이 서로 닮았고 사회를 향해 펼치고자하는 뜻이 같아서 더 좋았다. 명품 아지오와 소녀 김현미의 생각이 일치하므로 우리 모두의 내일은 분명 행복이요 성공일 것이다.다소니 화이팅! 김현미 화이팅! 아지오 화이팅!!! 
김현미 / 사회복지사 / 2019.6.1
영신이가 말하는 영신이!
영신이가 말하는 영신이...!-수원 사는 아지오 팬 전영신씨와의 데이트   글로 행동하고 참여로 보여주는 사람​ ▲ 전영신님과 유석영대표의 유쾌한 만남페이스북을 산책하다보면 자주 만나는 사람이 있다. 수원을 기반으로 다양한 시민운동을 벌이며 부지런히 활동하는 전영신씨다. 엉터리에게는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리면서 함께 사는 고양이 얘기도 심심치 않게 포스팅해서 페친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다. 소소한 일상도 강한 어휘를 사용하여 신선한 자극을 생성하기도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지극한 효심도 유쾌하게 표현하는 다정한 글쟁이다. 만나기 전에는 힘있고 시원시원한 캐릭터라 상상했는데, 막상 찻잔을 앞에 놓고 그와 마주앉아보니 외적인 부드러움이 풍부한 4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수원시노사민정협의회에서 대리로 근무하는 영신씨의 요즘 이슈는 지자체와 경제주체 그리고 근로자들 가운데 서서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내는 일이라고 한다. 협치를 바탕으로 상생의 환경을 조성하는 업무로써 매우 의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여기며 일하고 있다. ▲ 실천하는 행동가, 전영신님영신씨의 어릴 적 꿈은 여군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이 군인의 길을 택한다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는 반대론을 펴며 그 꿈을 접게 만들었다."제가 여군이 되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멋있었꼬 잘 어울렸을텐데..."미련과 아쉬움이 아직도 그에게 적지 않게 남아 있었따.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 뜻을 단 한 번도 거스르지 않았던 영신씨였기에 여군의 길을 포기하며 본인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보통의 삶 속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런 탓에 힐끗힐끗 그 때를 돌아보며​ 옛꿈을 만지작거리는 듯 했다."제가 생각해도 저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밋밋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주장이 뚜렷해서 명확하게 표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요. 그게 제 캐릭터라 생각합니다."​그래서 그는 시민운동과 더불어 정당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도 아니고 누구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 일이 필요한 일이고 나쁜 방향이 아니라면 글로 행동하고 참여로 보여주는 습관이 외적인 부드러움 속에 배어 있었따. 솔직함과 자신감에서 비롯된 신념과 의지가 충분하게 느껴졌다.​       찰지게 풀어 쓴 아지오 품평​영신씨와 아지오 이야기를 나누었다."정말 편해서 언제나 아지오를 즐겨 신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자랑도 하지요."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폐업했던 아지오가 부활했다는 대목을 얘기할 때는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청각장애인들의 일터이면서 좋은 품질을 자랑하는 신발이므로 꼭 성공해야 합니다. 진한 애정이었다. 아름다운 마음이었다.영신씨가 우리 아지오와 이렇게 친해진 이유가 따로 있었다. 영신씨가 다름 아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왕 팬이었다. 2000년도에 M본부 '100분토론'을 진행하는 유이사장을 접하고 그 달변과 확고한 주장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유이사장이 쓴 책 속에서 표현의 기술을 익혔으며, 2010년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유이사장의 캠프에서는 자원봉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영신씨가 정당에 참여하게 되었고 '시민광장'이라는 유이사장의 팬클럽에서 중책을 맡아 일을 하기도 했다. 그 뿐 아니라 영신씨의 주례를 유이사장이 서 줄 만큼 돈독한 인연을 지닌 사이로 무르익었다고 한다.2018년 10월 2일에 영신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품평이다.      쨘~ 조금 의미가 있는 신발을 구매했습니다. 아지오, 문재인 대통령의 구두로 유명해진 곳이죠. 기업 경영난 악화로 폐업했지만 문대통령님 덕분에 이슈가 됐고, 회사 폐업의 안타까움에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펀드를 조성, 다시금 자본금을 모금했습니다. 저도 그때 한 구좌 보탰습니다. ^^유작가님과 유희열님이 모델을 해주시고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도 모델에 동참했습니다. 저는 가을용 슬립온이 필요했던 찰나, 아지오가 생각나서 사이트 들어가 보니 제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이 있더군요. 가격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이 또한 좋은 일에 동참한다 생각하고 구매했습니다. 추석 연휴 전날 주문했고요, 배송은 일주일 정도 걸렸습니다. 오자마자 신어봤어요. 와, 이 신발, 착화감 죽이네요! 바닥 쿠션 있어서 푹신푹신해서 더 편합니다. 수제화 값을 톡톡히 하는 것 같습니다. 당분간 저의 발은 아지오 슬립온과 함께 하겠습니다.   ▲ 전영신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아지오 슬립온 7004 ▲ 아지오 슬립온 7004를 신은 전영신님​​​영신씨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저는 주변 분들에게 2010년 이전의 전영신과 2010년 이후의 전영신으로 나눌 수 있다고 자주 말해왔습니다. 그 기준은 바로 유.시.민. 세 글자입니다. 유시민 작가님의 경기도지사 출마가 저에겐 인생의 첫 번째 터닝 포인트를 마련한 계기가 됐거든요.  ▲ 2015년 10월 3일 유시민작가와 함께     유작가님을 알기 이전과 이후의 삶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자의적이고 자발적인 변화죠. ​아마 제 성격에, 누군가 저에게 억지로 변화를 강요했다면 받아들이지 못 하고 튕겼을 거예요. ​그랬다면 아마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 같아요.유작가님과 오랜 인연이 있는 유석영 대표님과 유작가님이 모델로 있는 아지오는, 저에게 그저 신발 만드는 업체로만 여겨지지 않습니다. ​펀드를 동참하고 착한 소비를 위해 신발을 구입하고 또 주변에 홍보를 하면서 애정 아닌 애정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가슴 한켠 애틋한 감정이 있는 곳이 아지오인 것 같아요.   - 2019년 5월1일, 전영신이 아지오에 보낸 글 선물-   ​얼마나 아지오가 좋았으면 저토록 품평이 찰질 수 있을까?유시민이사장, 아지오, 전영신...!흐뭇하고 만족스런 사랑의 트리오가 분명하다.   전영신과 안여사​옛날 안여사는 당당하면서도 멋있었다. 자존심 강하고 주장도 분명했따.그러나 전영신이 나이 서른을 넘어설 즈음에 안여사의 여린 모습과 외로운 기색이 눈에 들어왔다. 남들처럼 손주를 안겨드리지도 못하고 행복한 일상도 보여 드리지 못한 전영신이라서 안여사에 대한 마음이 짠하다. 남들은 전영신을 효심 지극한 딸이라 말하지만 정작 전영신은 그런저런 아픔으로 안여사를 가슴 한 켠에 담고 산다. 그러기에 더 자주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함께 간다. 더불어 전영신은 페이스북의 공간을 빌어 안여사에게 애정 공세를 펼치기도 한다. 그런 그가 오늘은 특별히 이 자리에서 속마음을 글로 버무려 안여사에게 편제를 건냈다. ​ ▲ 부모님과의 행복한 데이트영신이가 말하는 영신이   2018년 5월은 고 노무현대통령 서거 10주기가 들어있는 달이다.수원 사람들도 추모위원회를 출범해서 다양한 문화 행사를 펼친다.영신씨는 위원회의 총무를 맡아 의미있는 10주기를 선보이려고 분주히 뛰어다닌다.민주주의의 향기가 수원고을에 가득하리라 기대된다.​ ▲ 노무현대통련 10주기 수원시민 추모위원회 집행부와 함께 ​​영신이가 영신이에게 말한다."참여가 곧 힘이라고..."또 영신이가 영신이에게 말한다."영신이를 보고 참여하고 영신이 때문에 활동한다."전영신은 말로 설득하거나 힘으로 이끌지 않는다.스스로 분명하고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행동하리라 다짐한다.그래서 전영신이 모델로 그 자리를 지키기를 소망한다.아지오가 전영신에게 물었다."지금 꼭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전영신이 환하게 웃으며"나의 친구 고양이가 즐겁게 운동하며 노는 기구가 갖고 싶습니다."5월의 첫 날에 생일을 맞은 전영신씨에게 구두만드는풍경 가족들이,"멋진 영신씨의 생일을 많이많이 축하드립니다."
전영신 / 수원시 노사민정협의회 / 2019.5.1.
'YTN, 뉴스가 있는 저녁'앵커 변상욱 대기자와의 데이트.
'아지오'를 '구두친구'라 일컫는 저널리스트- YTN, '뉴스가 있는 저녁' 앵커 변상욱 대기자와의 데이트   ​변상욱 대기자는 누가 뭐래도 CBS 사람이다. 보도국과 편성국을 넘나들며 팩트를 가감 없이 전하는 기자로, 때로는 프로그램 진행자로 35년을 분주한 걸음으로 달려왔다. 그런 그가 2019년 3월 31일자로 CBS를 떠났다. 근무할 수 있는 연령이 꽉 차서 정년퇴임을 한 것이다. 틀린 일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할 말을 하고, 어렵고 복잡한 뉴스의 행간을 예리한 분석과 명확한 근거를 들어 꼼꼼히 알려 주었던 대기자 변상욱!   청와대와 총리실 그리고 해외 특파원으로 활약하지는 않았지만 변상욱 대기자는 언제나 국민들 가까이에서 꼭 필요한 정보를 눈높이에 맞게 전달하는 다정한 메신저였다. 퇴임하면 그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4월 1일부터 YTN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 7시 30분에 '뉴스가 있는 저녁' 보도 프로그램 앵커로 얼굴과 목소리를 동시에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능력이 풍부해서인지, 복이 많아서인지...   그래서 아지오 저널 4월호에서는 변상욱 대기자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우리 구두만드는풍경의 조합원이면서 감사직을 맡고 있어 언젠가는 이 코너에 초대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이 가장 좋을 거라 여겨져 자리를 함께 했다. 이번에는 약간 형식을 달리해서 묻고 답하는 인터뷰를 생략하고 변상욱 대기자가 직접 쓴 글을 여러분께 선물하기로 했다. 기자로 걸어왔던 지난 날, 아지오를 구두친구라 부르며 듬뿍 애정을 쏟은 이야기, 앞으로의 여정까지 소개해 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변상욱 대기자는 아지오에 좋은 소비자일까요? 아니면 그렇지 않은 소비자일까요?시즌1과 시즌2의 모델로 참여한 건 분명 좋은 역할이었는데, 구두 두 켤레를 무려 10년씩이나 신었다는 점은 아지오 입장에서 볼 때 결코 잘한 일 같지는 않은데...그 판단은 여러분께 맡긴다.변상욱 대기자가 써내려간 아지오 저널    
변상욱 / 앵커 / 2019.4.1.
「두드림」 옷장 속에 들어 있는 행운의 정장
​「두드림」 옷장 속에 들어 있는 행운의 정장   - 성동학 관장이 섬기는 전주 평화사회복지관 사람들과의 데이트-      드림×DREAM=두드림 옷장   전주에 가면 돈도 한 푼 안 받고 옷을 빌려주는 곳이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멋진 스타일의 정장을 빌려주는 두드림 옷장. ​입사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무엇을 입을까? 어떤 신발을 신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한 번 면접을 보기 위해 사오십 만원을 들여 새 옷과 구두를 사기에는 너무 벅차고 그냥 간편 복장으로 가자니 격이 맞지 않을 것 같고... 이런 사람들에게 두드림 옷장이 무료 영업을 개시한 것이다. 그 옷장 속에는 제법 세련된 신사 숙녀를 위한 정장들이 잘 진열 되어 있다. 지난 1월 30일에 문을 연 두드림 옷장은 벌써 정장을 빌리기 위해 선 접수한 사람들이 백 명을 넘어섰다. 이미 빌려 입고 면접을 다녀온 청년들이 무려 사십 명이 넘는다. 꽤 잘되는 장사라 여겨진다. 비록 돈이 오고 가지는 않지만... 그 많은 정장들 속에 아지오 구두가 돋보인다. 빌려가는 사람들이 더 멋진 성과를 내라고 열 켤레의 아지오 구두를 구매해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선뜻 내준다.  ▲ 전주 평화사회복지관에 마련된 두드림 옷장두드림 옷장 담당자 김지원 사회복지사는 "우리 두드림 옷장을 아지오가 빛내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구두를 신고 면접을 보러 가는 청년들이 매우 흐뭇해합니다. 전주 평화사회복지관이 선배들의 정장을 '드림' 받아 취업의 '꿈(DREAM)'을 이루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정장과 구두를 대여 합니다" 어찌 보면 옷을 빌려 입는다는 것이 어색하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리라 생각하는데 전주지역 취업준비생들에게는 매우 인기 높은 프로그램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돈 주고 사서 한번 입고 그냥 걸어놓기 보다 필요할 때 빌려 입고 되돌려 준다는 메리트가 취준생들을 매혹시킨다. 그보다도 선배들이 입지 않고 장롱에 넣어둔 정장들을 후배들에게 드린다는 취지가 더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그 속에 아지오가 취준생들의 격을 높이고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어서 가슴이 뿌듯했다. 지난 1월, '두드림 옷장' 사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찾아온 여성 취준생들이 간호사 면접시험을 위해 정장을 빌리러 왔다. 그 중 2명이 몸에 잘 어울리는 정장을 입고 면접에 응시하여 당당하게 취업의 문을 통과했다. 고마운 마음으로 두드림 옷장을 찾아온 그들이 하는 말,"행운의 정장이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라며 멋진 별명을 붙여 주었다.이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두드림 옷장은 매우 소중한 정신적 자산으로 확장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선배들이 마음을 담아 기부해준 그 옷들은 행운의 정장으로 취준생들에게 큰 꿈을 안겨줄 것이다. 또한 우리 아지오 구두는 신는 사람들을 정말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어서 모두가 일취월장할 것이다. ▲ 선배들의 정장을 '드림' 받아 청년의 꿈(dream)을 응원합니다.성동학 관장으로부터 듣는 사람 이야기   전주 평화사회복지관이 자리한 지역은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1,600여 세대가 아파트 단지를 이루고 있다. 약 30년 전에 부랑인들과 빈곤층을 관리가 용의하도록 집단화한 곳이어서 복지 수요가 높은 곳이다. 그럼에도 복지관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이용인들도 활기가 넘쳐 보였다. ▲ 두드림 옷장을 책임지는 평화사회복지관 일꾼들과 함께​"우리 복지관의 주인은 지역 주민들입니다. 어떠한 목표와 성과에 치중하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필요한 부분에 마음을 담아 공급하고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아가며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주민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복지관, 한발 앞서 찾아가는 복지관, 혁신으로 미래를 선도하는 복지관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바탕으로 지역과 사람을 섬기는 모습이 봄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성동학 관장은 원불교 성직자이다. 진리도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라는 철학으로 경쟁을 멀리하며 협치를 존중하는 인간중심의 실천가이다. 복지관 구석구석에서 사람을 옹호하는 풍경을 느낄 수 있다. 그런 탓에 보석 같은 후원자들이 오랫동안 물질과 마음을 이 복지관에 보태고 있다. 몸이 허약하여 물속에 들어가면 안 되는 주민이 다슬기를 잡고 튀김 장사를 해서 그 이익금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생활이 어려울 때 본인의 딸이 복지관 프로그램을 이용하며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고마움을 되갚는 심정으로, 얻은 이익금을 복지관에 드리고 있다. 또 하나의 미담은 공부하는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풀다가 틀리면 그 개수만큼 저금통에 돈을 넣어 여행을 가기로 했었는데 계획을 바꾸어 더 의미 있는 곳에 써달라고 복지관에 그 저금통을 기부한 일도 있었다. 어릴 적 복지관 방과후교실 등에서 이모저모로 도움을 받았던 직업군인이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것은 물론 본인의 생일 때에 특별한 비용을 마련하여 복지관에 후원하고 있다. "저는 사업 중심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목표와 성과에 자칫 사람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복지에 대한 인식은 우선적으로 비용을 앞세우고 그것을 토대로 높은 숫자가 표시되는 목표를 세워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굳어져 있다. 시작도 사람이고 과정도 사람이어야 하며 그 맺음도 사람이라는 생각을 멀리하는 일이 허다하다. 성동학 관장의 사람에 대한 운영 철학이 각박한 세상에서 치열하게 사는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 인간중심의 실천가 성동학 관장과 구두만드는풍경 유석영 대표아지오가 두드림 옷장에 드리는 선물   지난 2월 22일 문재인대통령은 아지오몰에서 아지오 1001 블랙을 주문했다. 그에 앞서 김정숙 여사도 2월 12일에 청와대 연풍문 팝업 스토어에서 직접 발을 실측하여 아지오 7005 모델을 구매했다. 그리고 2월 26일에 문재인대통령이 직접 아지오를 전달 받아 많은 사람들에게 아지오의 설립 배경과 다시 부활한 까닭을 설명했다. 즉 문대통령이 밑창이 갈라지도록 신었던 구두가 바로 아지오라고 자랑했다. ▲ 유석영대표가 문재인 대통령께 주문한 구두를 직접 전달하고 있다.  ▲ 문재인대통령이 아지오 구두에 대한 이야기를 내빈에게 전하는 모습​우리 청년들의 미래가 일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이번 정부는 청년들의 안정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두드림 옷장이 전주에 사는 많은 청년들에게 꿈을 선물하는 모습을 보고 아지오도 손을 맞잡기로 했다. 선배들이 기부한 멋진 정장에 잘생긴 아지오 구두를 코디하여 청년들의 꿈을 북돋아 준다면 금상첨화라 여겨지기에 기꺼이 기부의 대열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대통령의 구두였고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함께하는 아지오 이기에 친구보다 더 좋은 구두로 청년들을 응원하기 위해서이다. 전주 평화사회복지관이 멍석을 깔고 많은 선배들이 청년들에게 정장을 기증하며 아지오의 정성과 품격을 거기에 보탠다면 그야말로 찰떡궁합이 아니던가? 이 약속으로 우리 구두만드는풍경이 더욱 행복해짐을 느낀다. 더불어 우리 아지오를 신고 면접을 다녀온 어느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다짐을 해본다. 두드림 옷장의 정장과 아지오를 신고 면접을 다녀온 ○○씨의 이야기다."면접에 구두를 신고 갈 구두가 없어 고민이 많았는데 두드림 옷장을 통해 아지오 구두를 알게 되고 직접 신어보니 발이 정말 편하고 디자인도 젊은층 기호에 맞게 세련된 느낌이었습니다. 청각장애인 장인분들께서 오로지 촉감과 시각에만 의지해 만든 구두라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좋은 신발은 좋은 곳을 데려다 준다는 말이 있듯이 아지오 구두를 신고 면접에 합격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두드림 옷장 속에는 행운의 정장이 아지오와 함께 들어있다. ▲ 두드림 옷장에 전시된 아지오가 청년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평화사회복지관 / 사회복지관 / 2019.3.1.
평범과 색다름 속에서 행복을 빚어가는 사랑의 가정
​​평범과 색다름 속에서 행복을 빚어가는 사랑의 가정 - 공학도 아버지와 피아노 치는 아들, 심윤송-심현규 부자와의 데이트 뉴 SKY캐슬, 입시 코디보다 자유로운 선택이 옳았다.  ▲ 공학도 아버지와 피아노 치는 아들, 심윤송-심현규 부자"스앵님,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올겨울에 눈이 자주 안 오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SKY캐슬'이라는 드라마 하나가 대한민국의 일그러진 입시 행태를 꼬집으며 각종 유행어와 독특한 캐릭터로 금요일과 토요일 오밤중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펄펄 끓게 했다. 부모들의 치열함과 극성스러움이 학생들의 의견과 기대를 억누르며 오롯이 서울대 입성에만 몰입하는 스토리가 충격과 비극으로 끝을 맺어 뒷맛이 씁쓸하다. 그 바람에 한반도 상공에 머물던 눈구름들이 먼 곳으로 옮겨간 모양이다. 우리나라 입시제도가 언제쯤이면 잘 다듬어져서 국민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 있을는지...​ "현규는 공부보다 친구를 더 좋아해요. 좋아해도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현규가 중학교 과정을 마친 후 고교 진학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 끝에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지요. 학교생활이 맞지 않으면 진학을 안 해도 된다고 했고 선택은 현규가 하도록 했지요." 아버지 윤송씨는 16세 어린 아들에게 큰 결정권을 주었다. 학교를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걸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아빠의 제안에 몇 날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과연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깊이 생각하다 고등학교를 가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어쩌면 모험이었다. 부자지간에는 어찌어찌 그런 결정을 했더라도 윤송씨의 아내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현규가 학교를 안 가는 3년 내내 그의 아내는 갈등과 혼란 속에 살아야 했다. 특히 다른 어머니들이 자녀의 학교 이야기를 해올 때가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현규는 첫 해에 독학으로 공부해서 3개월만에 대입 검정고시를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으며, 충분히 놀면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쓰기도 했다. 3년째 되던 해에는 토익시험에 도전하여 800점대 중반의 성적표를 받기도 했다. "저는 어릴적부터 피아노 치는 걸 무척 좋아 했어요. 오랫동안 꾸준히 쳐 왔어요. 그런 이유로 대학에서 피아노 전공을 하기로 결심하고 약 4개월을 최선을 다해 연습하여 원하는 피아노를 전공하게 되었어요." 유명한 입시코디가 개입하지 않았고 큰돈을 투자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버지 윤송씨가 아들에게 진로에 대한 선택권을 일찍 주었고 그 선택을 존중하여 끊임없이 아들을 지지해 주었을 뿐이다. 그야 말로 멋진 다큐멘터리 '뉴SKY캐슬'이다. 명문대 특정 학과에 눈독을 들이며 전전긍긍하는 부모들에게 심윤송-심현규 부자의 선택과 결정 그리고 실천을 금과옥조로 삼아 주기를 권유해 본다. 평범과 색다름 속에서 행복을 빚어가는 사랑의 가정 ▲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는 성가대 활동윤송씨는 아주 어린 나이에 지금의 아내와 교회에서 만나 파릇한 사랑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윤송씨는 중학교 1학년, 그의 아내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선후배로 지내다가 한눈팔지 않고 'ONLY YOU'하며 나이 50이 되도록 아이 셋 낳아 단란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가족들 모두 노래를 좋아해서 아버지가 기타를, 아들이 피아노를, 아내와 딸들이 고운 화음으로 노래를 한다. 윤송씨는 청소년 시절에 전자공학도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어 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전자기기 개발 분야에서 순탄하게 일하고 있다. 말이나 형식에 얽매이기 보다는 충분히 듣고 많이 이야기하며 다름을 존중함으로서 안정과 즐거움을 지속시킨다. 그로 인해 높은 도덕성과 넓은 이해심이 가정의 화목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위기나 갈등이 있어도 파장이 적고 풀리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아들 현규에 대한 진로 선택에서와 같이, 색다르면서도 독특한 방법으로 행복을 만들어 간다. 많이 갖거나 높이 오르지 않았더라도 가정에 드리워진 사랑의 빛이 밝고 환함으로, 가족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아름답고 마음에는 언제나 자신감이 가득하다. 진짜 평범과 색다름 속에서 행복을 빚어가는 사랑의 가정이다. 걱정 반, 기대 반입니다.   ▲ 구두만드는풍경에서 함께 한 심윤송-심현규 부자와 유석영 대표 아지오 이야기이다. 윤송씨는 CBS대기자이며 우리 조합의 감사인 언론인 변상욱을 존경해왔다. 그가 쓰는 글이나, 펼치는 평론을 무척 신뢰한다. 지난 2013년경 변상욱 대기자가 구두만드는풍경의 모델이라는 사실을 알고 아지오 구두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이 바빠 차일피일 미루다 뒤늦게 아지오 구두를 주문하려 했으나, 이미 회사가 폐업한 후였다. 매우 아쉬운 마음이 컸었다. 그러던 중 문재인대통령으로 인해 구두만드는풍경이 부활한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반겼다. 틀림없이 변상욱 대기자가 이번에도 모델로 나설거라고, 윤송씨는 믿었다. 그의 예측대로 변상욱 대기자는 아지오 시즌2의 모델이며 구두만드는풍경의 감사로 참여했다. 윤송씨의 발은 그리 길지는 않지만 등과 볼이 높고 넓어서 기성화가 늘 불편하게 느껴졌다. 누구보다 맞춤신발이 필요했던 윤송씨는 아지오 구두를 신고 정말 발이 편하여 아들 현규에게도 신사화를 아지오 구두로 맞춰 신게 했다. ​▲ 아들 심현규님이 구두만드는풍경에서 여러 구두를 고르고 있다. "정말 걱정 반 기대 반입니다. 우리나라 현실에 제조업을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원자재 수급, 인력관리, 가격 경쟁력 등에서 불리한 요소가 많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무형의 자산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장벽처럼 느껴져서 아지오처럼 수제화를 제작 판매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걱정이 크지요." 윤송씨의 애정 어린 충고와 걱정이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도 윤송씨는, "저처럼 특별한 발을 가진 사람들이 아지오의 고객으로 많이 모여들면 충분히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수제화의 장점과 발 건강을 중요시 여기는 고객들이 아지오의 진가를 인정해 줄거라 기대합니다. 당분간 고생스럽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춘을 앞둔 추운 겨울에 윤송씨가 걱정 반, 기대 반을 적절히 섞어 우리 아지오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서로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걸어나가는 사랑의 가족! 전자공학도 윤송씨가 요즘 들어 인생 후반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새롭게 사업을 시작해 보라는 사람,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는 사람의 귀뜸에 여러 갈래의 길을 따라가 보기도 한다. 지금까지도 무난하게 살아왔으므로 인생 후반전도 노래 부르는 기분으로 참신한 일을 하리라 믿는다. 현규는 피아노와 친하므로 멋진 선율 속에서 푸르게 꿈을 키워갈 것이다. 이미 어린 나이에 선택의 기회를 누렸고, 넓게 사람을 사귀었으므로 밝은 모습 유지하며 멋진 연주를 계속 할 것이다. 기대와 바램이 늘 긍정으로 정답을 찾아내며, 세상이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아름다운 선물로 제공할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윤송씨 가정에 묵직한 근심이 하나 있다. 현규 바로 밑의 여동생이 2년 전에 백혈병을 얻어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다행히 약물로 치료할 수 있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골수를 이식하지 않고도 곧 완치될 수 있다고 한다. 일반 가정에서는 우환 중에 우환으로 여기겠지만 윤송씨의 가정에서는 존중과 이해, 지지와 격려 그리고 사랑의 힘으로 다져놓은 행복이 있기에 이 어려움도 잘 이겨낼 것이다. 아지오 사원들도 윤송씨의 가정이 봄꽃처럼 화사하게 향기를 내며 활짝 피어나기를 기도한다. 심윤송-심현규 부자, 파이팅!!! ... 이번 호에서는 여러분께 부록을 드립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쓴 편지가 가슴 뭉클합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드리는 편지가 따뜻한 사랑입니다. 마음으로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빠가 아들에게] 사랑하는 아들.. 항상 보는 얼굴이고 또 이런저런 얘기들 많이 나누는 데도 여전히 이렇게 글을 쓰는거는 아빠한테도 어색한 일이네. 네가 피아노를 전공하겠다고 했을때 어릴 적 그렇게 혼나면서 해온 피아노를 네가 스스로 결정하는게 아빠한테는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었단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길게 준비하지도 못했는데도 다행히 진학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도전을 받으며 실력을 닦는 네 모습을 보는게 아빠는 참 감사하다. 특별히 작년 말에 이렇게 우연찮게도 같이 성가대를 해볼 수 있었다는게 지금 돌이켜 봐도 정말 뿌듯하고 좋았었단다. 지난 1년 이러니 저리니 해도 성가대원으로 서주고, 급할때 반주도 해주고 피드백도 해주는 네가 항상 고맙고 대견하구나.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예체능으로 살아간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지금 순간도 네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만, 네가 말한 것처럼 지금 이순간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피아노라는 산을 넘어보겠다는 네 의지를 들으면서 아빠에게도 도전이 되고 좋았었단다. 의지를 가지고 말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보다 중요한 건 그 말에 책임을 지고 가진 모든 역량을 들이부어 한 단계씩 성숙해 가는 과정을 통해 땀의 열매를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1년 뒤, 아님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떤 기간을 넘을 때마다, 어려운 단계들을 하나씩 밟아가면서 성장해가보자. 아빠 역시도 지금의 위치에서 다음 단계를 밟아 가도록 노력할게. 아빠가 혼내는 때도 종종 있고, 가끔은 무시하는 듯한 투로 얘기할 때도 있지만 언제나 너와 너의 가능성과 너의 능력을 믿는다. 사랑한다. [아들 현규가 엄마에게] 어머니께 막 스무살이 되어 들떠 있었던게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1년이 지나 스물한 살이 되었습니다. 아직 적은 나이기는 하지만 이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 늙어간다는 것이 아닌 이 나이에 맞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제겐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저는 아직 고등학생인것 같은데 이제 21살로 살아가야 하니까요. 어렸을 때는 제가 다 컸다고 생각했고 그로인해 어머니께 상처를 드렸었는데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제가 아직 많이 어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죄송합니다. 철없던 시절 반항과 최근까지도 제 멋대로 행동하려고 했던 일들,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살이 된 이후로는 오히려 더 어머니가 곱게 보시지 못할 삶을 살아 왔던 것 같습니다. 나도 이제 다 컸다고 생각하고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작심삼일에 '작'도 실천하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더군다나 난생 처음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어 부모님과 떨어져 살기까지 했으니 어머니께서 얼마나 못 미더우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사춘기가 다시 온 것처럼 행동했었습니다. 멋진 대학생활을 말하며 어머니께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 했던 제가 너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대학 생활 및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아직도 저는 어른이 되지 못했으며 더 이상 오만하게 살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늘 편지를 쓸때 마다 얘기했던 것과 같이 한순간에 극적으로 제 모습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대신 저는 정말 노력하겠노라 다짐하겠습니다. 어머니께 그리고 아버지께 더욱더 좋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늘 죄송하고 감사하며 사랑합니다. 
심윤송 / 공학도 / 2019.2.1.
예쁜 바다, 높은 한라산, 여러 오름과 동굴, 사람이 아름다운 제주
​예쁜 바다, 높은 한라산, 여러 오름과 동굴들 그리고 사람이 아름다운 제주!-큰 일하는 큰 교회, 제주성안교회 류정길목사와의 신년 데이트새아침에 듣는 덕담"올해는 상황과 여건에 관계 없이 사람들 마음에 희망의 꽃이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큰 어려움이 있더라도 작은 희망을 품어서 꿈을 이루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남북을 이어주는 통일의 길이 열리고 경제도 행복해지기를 기대합니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가정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제주 성안교회 류정길 목사 제주성안교회 류정길 담임목사가 기해년 첫 날에 선물로 전해준 새해 덕담이다.설립 111주념을 맞는 이 교회에서 올해로 11년째 담임 목회자로 큰 사명을 감당하는 류목사가 우리 구두만드는풍경과 모든 고객들에게 복스러운 소망을 안겨 주었다."저는 아지오 구두를 예배시간에 설교할 때만 신는답니다. 정말 귀하고 값진 구두라서 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예배시간에 아지오 구두를 신고 있습니다."유년부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약5천명의 신앙인들이 함께하는 '제주성안교회' 담임 목회자가 우리 아지오를 그토록 아끼고 귀히 여긴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소박한 기쁨과 긍지도 느껴졌다. 마치 받아쓰기 시험에서 100점 맞은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 마음처럼 엔돌핀이 펑펑 솟는 순간이었다.류목사에게 고향을 물었더니,"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습니다. 지난 2003년에 처음 부목사로 제주에 들어와 4년을 사는 동안 제주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그 후, 3년을 서울 목회를 하다 다시 제주성안교회 담임목사가 되어 11년 전에 부임하여 제주 속에 빠져서, 제주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기쁘게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고향은 누가 뭐래도 제주도랍니다."예쁜 바다, 높은 한라산, 많은 오름들 그리고 곶자왈이 주는 맑은 공기가 정말 좋다는 류목사를 보며 확실한 제주 사람이라 여겨졌다."그렇게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도 좋지만 격한 항쟁과 가슴 아픈 다툼들 속에서도 강한 의지와 바른 신념으로 제주를 지켜온 이 곳 사람들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제가 어쩌면 제주 사람들의 그 아름다운 정신에 빠져 부지런히 목회를 하는지도 모릅니다." 감귤 내음이 그윽한 제주에서 지역의 걱정과 안타까움을 걷어내며 열정을 다해 선한 목회활동을 이어가는 류목사가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오늘은 아지오가 맺어준 류정길 목사와의 인연을 바탕으로 흐뭇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는 예감이 든다. 열심히 귀담아 들어 그 이야기를 뭍으로 가져와 여러분과 정답게 나누기를 바래본다.▲ 류정길 목사와 유석영 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큰 일하는 큰 교회...제주성안교회는 품이 넓고 일도 크게 하는 공동체이다. 교회를 확장하기 보다는 지역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제주 사람들이 골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성안복지재단'을 통해 수십 가지의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문화예술분야에도 각 장르에 따라 직접적인 비용을 지불하여 힘을 보태는 의로운 큰 손이다.​▲ 제주성안교회는 품이 넓고 일도 크게 하는 공동체이다.류목사가 재임하는 지난 11년은 제주성안교회의 확장기였다. 신앙인의 수와 그에 따른 교회 규모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와 같은 결실은 교회 중심보다는 지역사회를 보듬는 큰 품이 좋아서 많은 신앙인들이 모여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담임목사의 목회 철학과 복지 마인드가 그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특히 위기 청소년들을 건강한 사회인으로 양육하기 위해 대형버스를 '달리는 상담소'로 리모델링한 사업이다. 컵라면 등을 먹을 수 있는 스낵공간과 상담공간이 꾸며진 버스가 직접 현장을 누비며 제주 청소년들의 꿈을 밝게 해주어 지역사회를 크게 안심하게 했다."사회의 모순과 위기에 대해 일반 교회가 침묵하고 있어서 먼저 우리 교회가 찾아가는 복지를 실천했습니다. 어느 말기 암 신앙인이 내놓은 헌금과 교회의 생각이 배합되어 이러한 일들을 시작해서 지금도 쉼없이 지역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최근에 대형 교회들이 상식 밖의 일들을 행하면서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우려를 갖게 했다. 이런저런 실망감이 있던 차에 류정길 목사와 제주성안교회의 오밀조밀 하면서도 긍정이 가득 담긴 실천  릴레이를 접하며 다소의 위로를 받는다.신학을 준비하던 류목사가 하나님께 능력을 주시라고 기도했을 때,"설교를 잘하는 능력보다, 병을 고치는 은사보다 사랑하는 능력을 제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지금도 류목사는 그 말씀을 목회의 주어로 삼아 교회 밖 세상에 가능한 많이 사랑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계속 한다고 말했다. ▲ 류목사가 재임하는 지난 11년은 제주성안교회의 확장기였다.빵점 남편, 50점 아빠..."젊었을 때는 10년 넘게 청년들과 제자훈련, 끊임없는 상담을 해야 했기에 집안을 돌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은 교회의 규모가 확장되면서 더욱 아내와 두 딸들에게 다가갈 여유를 갖지 못했습니다. 미안한 마음과 아쉬운 생각이 매우 큽니다."그의 아내는 누구보다 류목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 외롭고 어려운 시간들을 혼자 인내하며 뒤에서 조용히 내조를 해왔다. 그로 인해 두 딸들의 양육은 순전히 아내 몫이었다."제가 젊은 날에 도시 빈민을 위한 목회를 계획했을 때 아내는 한사코 반대했습니다. 그 길이 나빠서가 아니라 저의 그릇이 걸맞지 않다는 사실을 아내가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류목사가 어려운 고비를 맞았을 때도, 큰 일을 계획할 때도 언제나 그의 아내는 뒤에서 지지와 응원 그리고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잘 컸고 가정이 화목한 것도 모두 아내의 덕이라고 말하는 류정길 목사!"교회 일을 잘하는 것이 최고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두 딸에게 빚을 많이 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빵점 남편에 50점 아빠가 맞습니다."류목사와 제주성안교회의 새해 새소망을 듣는다.'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데살로니가전서의 구절을 지표로 늘 실천을 계속하는 류목사의 2019년 소망을 들어본다."올해 제주성안교회의 표어는 '동행, 그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그 동안에는 '담대하게 거침없이', '날개를 펴라 바람이 분다', '믿는대로, 말하는대로, 꿈꾸는대로' 등이었지요. 거시적이면서 성장지향적인 표어였습니다. 올해는 하나님과의 동행, 아내와의 동행, 두 딸들과의 동행, 우리 제주성안교회 신앙인들과의 동행을 목표로 설정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앞에서 따라오기를 바라며 달려왔다면 이제부터는 좀 더 가까운 사람들과 따뜻한 동행을 이어가며 마음을 나누자는 뜻입니다." ▲ 2019년에는 좀 더 가까운 사람들과의 따뜻한 동행을 약속해 본다.마틴루터킹 목사의 용기있는 실천과 넬슨 만델라의 위대한 지도력을 흠모하며 독일의 블루마르트 목사의 사회참여를 중심에 둔 목회 철학이 류목사를 지탱해 주는 정신적 자산이라고 한다.아직도 초년 목회자 시절에 하지 못했던 도시빈민을 위한 목회가 이만저만한 아쉬움과 마음의 부채로 남아 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제공하는 큰 자동차를 마다하고 언제나 경차를 타고 다니며 목회활동을 한다. ▲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인 류목사는 경차를 타고 다니며 목회활동을 한다.그와 더불어 류목사는 중국과 외지에서 밀려들어온 투기자본으로 인해 제주의 토지가 제 기능을 못하고 가격만 상승하는 데에 통증을 느끼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이 무차별적으로 거래되면서 후대에 물려줄 자산을 잃을 수 있따는 점에서이다.다른 어느 곳보다 제주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보물이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도 류목사는 여기저기 기울어진 운동장을 교회가 나서서 평평하게 만들어 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류목사의 생각은 언제나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이면서 지역을 사랑해야할 의무를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끝으로 류목사에게 모두가 힘을 얻고 소망을 가질 수 있는 메시지를 덤으로 달라고 부탁했다."두려워하지 마세요.불안해하지도 마세요.당신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합니다."기해년 새아침에 우리 구두만드는풍경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영양가 만점의 비타민이다. 누구라도 먹으면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리라 믿는다.제주성안교회의 융성과 류정길 담임목사의 '동해, 그 아름다운 여정'이 행복하게 계속되기를 우리 아지오가 기원해본다. ▲제주 노을  ▲ 제주 집▲ 제주의 푸른 바다▲ 아름다운 제주를 사랑하는 류정길 목사
류정길 / 제주성안교회 담임목사 / 2019.1.1.
홍삼과 마이산 그리고 아지오
홍삼과 마이산 그리고 아지오-진안군 장애인종합복지관을 이끄는 배인재관장과의 데이트​사회복지사로 걸어온 20년​논밭보다 산이 더 많은 진안에서 겨울의 시작을 본다. 마이산이 의젓한 표정을 지으며 찬 바람에 두 귀를 씻고 있다. 오늘은 이곳에 사는 가슴 뜨거운 사회복지사 한 사람을 만나고자 소태정 고개를 넘어 먼 길을 달려왔다. 진안군 장애인종합복지관장으로, 전라북도 사회복지사협회장으로 쾌속 질주하는 배인재 관장의 실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 진안군 장애인종합복지관 앞에서​"제가 사회복지현장에 발을 들여 놓은지 벌써 20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은 군산에서 달동네를 누비며 주민들과 함께 했고, 두 번째는 새로 세워진 노인복지관의 지휘봉을 잡아 부지런히 어르신들과 희망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9년 전에 이 곳 진안에서 장애인종합복지관의 시작을 총괄하며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습니다."30대 중반부터 기관장이 되어 조직을 이끌어온 배관장은 마흔일곱 나이에 걸맞지 않게 무척 어른스러워 보였다. 가난 속 어린 시절에 견디는 힘을 길렀고, 청년기에는 분명한 표현으로 스스로의 신념을 말하며 옳은 일에 마음을 쏟는 습관으로 다지고 익혀서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복지의 리더로 우뚝 선 배인재 관장...!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바로바로 묻고 답하는 모습은 행복한 비즈니스로 결실을 맺고, 시작에서 과정을 거쳐 완성 단계까지 밀고 가는 추진력은 지역사회에 좋은 에너지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도시가 지닌 풍부함이 없어도 주민들과 손을 맞잡고 색다른 복지 신제품을 개발하여 장애인들이 웃을 수 있도록 마을 분위기를 변화시켜가는 배관장의 실천기술은 고품격 좋은 세상이었다."저의 대학시절은 학생운동과 농민운동이 전부였습니다. 교수님께서 가난한 저를 위해 특별한 장학금을 받게 해주셨는데 공부는 열심히 안하고 구부러진 세상과 고통스러워하는 농민들 속에 살았었지요."학문도 중요했지만, 정의와 평등이 굴절되는 세상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던 배관장이기에 저항과 투쟁을 계속하며 정해진 목표를 이루려는 의지를 품고 현장을 지켜왔다. 요즘 정치인들은 돈이 있어야 복지를 할 수 있다고 말하며, 공무원들은 법에 의해서만 복지를 실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배관장은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 중심의 복지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했고 모두가 행복할 때까지 열정을 펌프질해주는 터보엔진이었다.​고백 그리고 반성​"저의 형은 지적장애인입니다. 어릴 적에는 그런 형이 무척 수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선뜻 말하지 않았고 그저 창피하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배관장은 그런 이유로 장애인복지 분야는 애써 멀리하려 했다. 달동네 주민들과 노인들을 위한 복지에 몰입해서 사회복지 여정을 설계했었다. 그런 배관장이 지금은 장애인종합복지관장으로 9년째 실천을 계속하고 있다.▲ 지역 장애인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얘기하는 배인재관장과 지역장애인 활동가...​가족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작은 피해 의식이 평생을 짓눌러 왔었는데... 지금 와서 자신의 마음을 여과없이 내어놓는 배관장의 솔직함에 조금은 놀라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러한 환경이 꼭 필요한 장애인복지의 모델을 생성하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듯 했다.배관장에게, 가정에서는 어떤 남편이며 어떤 아빠인지를 물었다. "첫 직장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추구하는 방향이 같고 가고자 하는 길이 같아서 평생을 함께 하기로 했지요."배관장은 언제나 일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리고 늘 바빴다. 끊임없이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이어져갔다. 아내와 딸아이에게 줄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은 날이 갈수록 줄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의 아내는 배관장을 지지해 주었고, 딸도 무탈하게 잘 자라주었다."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늘 반성하지만 일과 사람을 만나면 반사적으로 팔을 걷어붙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사회복지를 올곧게 실천할 수 있었던 기반은 온전히 아내와 딸의 전폭적인 신뢰와 응원 때문이었습니다."배관장의 형에 대한 고백과 가정에 대한 반성이 요새 사람들이 얼른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사회지도자로서의 막중한 책임과 짊어진 사명에 비추어 볼 때에는 심정적인 공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도 요즘 배관장은 가족들과 대화의 시간을 늘리고 취미생활도 함께 하며 남편과 아빠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그가 세상에서보다 가정에서 더 사랑받는 남편과 아빠가 되기를 바래본다.​마이산에서 온 편지​배인재관장은 누구보다 아지오의 팬이다. 그래서 진안 사람들에게 아지오가 지닌 정신적 가치와 구두로서의 품질을 열심히 홍보하여 많은 이웃들을 아지오의 고객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 그가 기쁜 마음으로 우리 구두만드는풍경 앞으로 편지를 보내왔다.2018년 6월 30일, 아지오 구두가 우리 집에 택배박스에 쌓여서 도착했다. 잘 다듬어진 가죽의 향기가 훅 들어왔다. 제작 주문한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아지오 구두. 기쁜 마음으로 명절 선물을 받은 아이 마냥 실내에서 구두를 신고 몇 걸음 걸어보았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에 남기면 좋을 것 같아서 몇 장 사진을 찍어두었다.▲ 아지오 택배 박스와 구두바로 다음 날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리는 세계사회복지사대회 참석차 출국을 해야 하는데, 도착 시간이 딱 맞아떨어졌다. 인천공항에서 영국 히드로우 공항을 거쳐 비행기를 다시 갈아타고 아일랜드까지 함께한 나의 아지오...짐 아이프 교수님 같은 사회복지 인권의 대가를 포함한 전 세계사회복지사들과 만나고, 다양한 실천경험과 사례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대회 공식 일정 틈틈이, 자투리 시간에는 더블린 시내 구석구석을 걸으며 아일랜드의 깊은 속살을 들여다보는 행운을 안았다. ▲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세계사회복지사 대회에서​소문대로 아일랜드 민족은 영국의 오랜 지배 속에서도 자존심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문학과 예술분야에서는 가히 전 세계의 정상권을 지킬 수 있는 충분한 토양을 갖추고 있었다. 식민지배의 경험을 공유한 한국 사람들과는 묘하게 통하는 정서도 참 반갑다. 거리의 놀라운 실력들의 버스킹 공연들에도, 역시 아지오가 함께 했다.한 달쯤 뒤, 한국사회복지사협회 50주년 기념식에도 아지오를 신고 참석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리는 유라시안 포럼에도 역시 아지오와 동행했다. 정장 차림에도 전혀 무리가 가지 않고, 편한 바지를 입었을 때도 캐주얼 감을 잃지 않았다. 안중근 열사와 최재형 선생의 피땀이 서린 연해주 공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도 아지오는 나에게 자부심과 편안함을 함께 선물해 주었다. 여기저기를 쉼없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요사이 뒷축이 많이 닳았다. 내게 온 5개월, 여러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함께 한 나의 정다운 여행 파트너...▲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유라시안 포럼에서도 함께 한 아지오​부끄러운 사실을 하나 고백해보면... 난, 발에 땀이 엄청 많이 나는 편이다. 그런데 아지오를 착용할 때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가죽이 숨을 쉰다더니, 끈적함도 없고 따라서 이물감도 없다. 발모양도 길쭉하지 않고 도톰한 편인데 직접 실측을 해서 구두를 맞추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아지오를 신고 전 세계를 누비는 사회복지사에게 아지오는 최적의 출국 파트너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난 아지오의 호남권 무급 홍보대사 노릇을 계속 해야겠다. 동료 사회복지사들에게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는 구두, 아지오. 함께 할수록 나에게 자신감 심어주는, 나는 네가 너무 좋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유라시아 포럼- 아동복지시설 입구에서​p.s. 세계사회복지대회와 유라시안포럼 한국 대표단을 이끄신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오승환 회장님도 나의 아지오를 보시고, 유석영대표를 만나게 해달라고 성화시다. 아무래도 11명의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아지오가 날로 번창하기 위해서라도 사회복지사들 사이에서 아지오가 유행이 될 좋은 징조이다. 또 모르지, 이렇게 열심히 판촉하면 유시민 작가님을 전주에서 모실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올지 누가 알아?-진안에서 배인재가 띄웁니다.홍삼과 마이산 그리고 아지오진안의 명물은 홍삼이다. 과자도, 마시는 차도, 그리고 보약도 홍삼을 테마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진안은 사계절 내내 홍삼 내음으로 가득하다. 마이산은 진안의 상징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오르고 애인처럼 아끼는 명산이다. 비록 돈이 많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터가 적어도 마이산이 주는 정기가 선물처럼 모두에게 힘을 보태주어 출세한 사람도 많고, 걸출한 명인들도 많다. 이곳에 아지오를 신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 좋다. 배인재 관장이 뜨거운 가슴으로 지역을 일구며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모습이 더욱 돋보인다. 올 겨울이 춥더라도, 봄이 오는 길이 멀더라도, 이처럼 자연과 사람 그리고 꿈이 따뜻하게 어우러진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라 여겨진다. 배인재 관장이 그려내는 또다른 사회복지의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아지오가 파이팅이라고 크게 응원의 함성을 보낸다. ▲ 마이산 앞에서 배인재 관장과 유석영 대표​ 
배인재 / 진안군 장애인종합복지관장 / 2018.12.1.
국화 옆에서, 아지오 옆에서...
국화 옆에서, 아지오 옆에서...-보듬어 아지오를 사랑하는 밤나무골 주인과의 가을 데이트-구두만드는풍경, 그 추억 속으로...▲​ 구두만드는풍경의 옛 공장 모습​  가을색 짙은 파주에서 아지오의 추억을 만져본다. ​처음은 설렘이었고 과정은 고생의 연속이었으며, 맺음은 아픔과 좌절이었다. 원래 분명한 목표는 성공이었는데...   몹시 추웠던 2010년 12월에 빚을 얻어 공장을 세우고 기계도 마련했었다. 이듬해 1월 2일에는 6명의 청각장애 사원들이 꿈을 안고 출근하면서 벅차게 아지오 시대를 열었다. 유능한 구두장인을 적은 급여로 영입하려고 십(10)고초려한 일, 수녀화 300켤레를 주문받기 위해 다섯번 퇴짜를 맞으며 충남 공주를 오갔던 추억이 어제처럼 선명하다. 문을 닫은 후 5년만에 다시 찾은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 옛 공장! 건물은 그대로인데, 망치소리와 진한 가죽 냄새로 가득했던 그 공간은 몸집 큰 기계와 묵직한 쇳덩어리로 꽉 차 있었으며 낯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뿐이었다. 옛날에는 '구두만드는풍경'이라는 글자 하나하나에 희망이 서려 있었고 손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정겨웠던 곳이었다. 그래도 많은 이웃들이 우리 '구두만드는풍경'을 응원해 주었고, 구두 한 켤레를 사 신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고객들도 많았었다. 직원들은 줄기차게 행상을 다니며 나름의 이벤트도 진행했지만 버는 돈이 써야 할 돈보다 모자란 탓에 어려움이 산처럼 높아져 결국 눈물을 머금고 문을 닫고야 말았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이렇게 저렇게 묵은 상처를 건드리고 지나가는 통에 가슴이 먹먹해져옴을 느낀다.   그래도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고생하던 시절에 만든 아지오 구두를 문대통령께서 밑창이 닳도록 오래 신어주신 덕분에 '구두만드는풍경'이 경기도 성남에서 되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꿈에도 생각하지 모샜떤 일이라 크게 놀라기도 했고 동시에 새로운 비전을 얻기도 했다. 그렇게 '아지오 시즌2'가 막을 올려 어언 1년을 맞이하게 된다. 파주의 가을 속에서 옛 추억을 만지작거리다보니 조금은 짠한 생각이 밀려오기도 했으나 단풍잎을 닮은 감사의 마음이 넉넉하게 펼쳐지면서 오히려 따뜻한 위로를 얻는다.​처음 우리는 그리고 또 우리는...​  우리가 파주의 가을 속으로 들어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독하리만큼 아지오를 사랑하는 어떤 분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지난 2010년 즉, 우리 '구두만드는풍경'의 문을 연 첫 해에 문산에 있는 '밤나무골'이라는 음식점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가 처음 만난 사람이다. 그당시 우리 직원들의 습관은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아지오 구두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구두 한 켤레라도 더 팔기 위해서였다.   그날도 앉자마자 그 음식점 사장에게, "저희는 올해 1월부터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아지오 구두를 만드는 사람들이랍니다. 천연 소가죽으로 수제화를 제작하기 때문에 무척 발이 편합니다. 디자인도 멋지고요..." 숨을 몰아쉬며 아지오 구두를 설명하는 우리를 진중하게 바라보던 그 사장은, "아! 그러시군요. 저는 이 집 주인 박정숙입니다. 그렇게 좋은 뜻이 담긴 구두라면 당연히 사드려야지요. 얼마나 힘드세요. 우선 제 구두를 사고 남편과 아들 구두도 사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의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은 "괜찮습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돈 없어 못 삽니다."하며 거절하거나 핀잔을 주는데, 뜻밖에도 그는 우리를 고운 시선으로 응대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다음날 약속대로 아지오 구두 다섯 켤레를 한꺼번에 현금으로 구매하였다. 그런 그의 선한 행동에 판매 부진으로 지쳐가던 우리는 다시금 힘을 얻었고 그 인연으로 '밤나무골'과 '구두만드는풍경'은 매우 다정한 이웃으로 손을 맞잡았다.​▲ 박정숙 사장과 유석영 대표가 옛 추억을 얘기하며 함께 걷고 있다.​  "제가 처음 아지오 구두 얘기를 들었을 때 정말 좋은 일이라 여겨졌습니다. 일반 구두와는 달리 청각장애인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사실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박정숙 사장은 8년전 우리와의 첫 만남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아지오 구두를 소유하게 된 것을 큰 자랑으로 삼고 있었다.   "어느날 구두만드는풍경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더 열심히 주변에 홍보했어야 했는데..."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우리만큼이나 그의 마음도 무척 아팠다고 한다. 더군다나 '구두만드는풍경'의 간판을 내린 후에 4년이 지나도록 우리가 발길을 뚝 끊은 탓에 무심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작년 가을 어느 아침에 라디오에서 아지오 이야기를 듣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반가웠습니다. 얼른 전화를 걸어 먼저 인사를 나누고 제가 구두만드는풍경의 재창업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지요."   그랬었다. 박정숙 사장은 처음 우리를 만났을 때처럼 그렇게 우리 아지오를 다정하게 보듬어 주었다. 우리는 그에게 무심했지만 그는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때 산 구두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박정숙 사장의 아지오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독한가를 충분히 체감하고도 남았다.▲ 박정숙 사장이 2010년에 구매한 아지오 구두들...국화 옆에서, 아지오 옆에서  밤나무골 사장 박정숙은 여성CEO이다. 이 음식점과 더불어 실내공기를 정화하는 필터 제조 판매 회사도 20년째 경영하고 있는 사업가이다. 어릴적부터 부유한 가정에서 나눔의 방법을 익힌 덕에 마음 씀씀이가 여유롭고 일을 추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폭이 넓다.   "제 나이가 좀 많습니다. 1952년생이니까요. 하지만 지금도 일하는게 좋고 사람을 만나서 얘기할 때가 즐겁습니다. 여자가 공부를 많이 하면 시집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아버지 고집으로 인해 그렇게도 원하던 교사의 꿈도 이루지 못했고, 다섯 번 임신해서 네 번씩이나 아이를 유산하는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결혼 초기에 가난을 이기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큰 돈도 떼어봤습니다."   워낙 밝고 명랑해서 고생을 모르는 사람으로 보였는데 그에게도 안 되고, 어렵고, 못 이룬 일도 많았던 모양이다. 특히 아버지로 인해 대학진학의 꿈이 깨졌을 때 심적 고통이 매우 컸다고 한다. ▲ 국화 옆에서 아지오 구두를 보듬는 박정숙 사장  "저는 위기를 운명으로 여깁니다. 피하거나 버릴 수 없는 인생의 한 부분이기에 위기를 특별하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견디고 노력해서 잘 이겨내면 더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기 때문이죠"   가을 국화 옆에서 소녀 박정숙을 본다.  "원래 60살까지만 일하고 그 후로는 즐기며 얘기하며 사랑하며 살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일이 재미있고 좋아서 부지런히 뛰고 있네요." 사업을 계획하고 확장하는 꿈을 말할 때는 여성기업인이지만, 꽃을 얘기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틀림없는 소녀 박정숙이다. "이제 저는 딱 70살까지만 일하겠습니다. 동창회도 나가고 자유롭게 여행도 하면서 낭만적으로 살 거예요."   과연 사업가 박정숙일지, 소녀 박정숙일지 두고 볼 일이다. ​우리 조합원 박정숙과 아지오의 미래를 그려본다. ​  아지오 시즌2가 시작되면서 36명이 비용과 마음을 보태서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모든 조합원이 다 소중하지만 그 중 박정숙 사장은 아지오의 고향 파주에 살면서 지금도 한결같이 아지오를 사랑해 주고 있기에 친근감이 더하다. 그보다도 8년 전 사 신은 아지오 구두를 지금도 애지중지하는 그가 우리를 더 아끼리라 믿는다.   " 다시 시작한 구두만드는풍경이 잘 되고 더 커져서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오래오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품질도 중요하고 영업은 더 활발해야지요. 언제든지 제가 필요하면 전화하세요. 함께 열심히 뛰겠습니다."   어렵고 복잡한 표현보다 진심이 담긴 그의 염원이 정말 큰 에너지로 다가온다. 사업 경험이 풍부하고 전문성이 넘치는 그가 우리 조합원이기에 아지오의 미래는 정말 든든하다.   "진정한 성공은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록 0%로 되돌아갈지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두만드는풍경이 모두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그 이상으로 성공의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렇다. 아지오는 반드시 성공해야 하며 꼭 성공할 것이다.   숫자에 연연하는 작은 성공이 아니라 모두 최선을 다하여 공의롭고 위대한 성공을 품에 안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아지오를 신는 그 날까지 우리의 모든 힘을 쏟아부으면 완전 가능하리라고 본다.   밤나무골 주인으로부터 성공의 비결을 배웠으니 우리 '구두만드는풍경은' 진짜 성공할 것이다.   멋지게, 최고로 멋지게...! ​ 
박정숙 / 여성CEO / 2018.11.1.
아지오 신고 찾아간 소록도
아지오 신고 찾아간 소록도 -젊은 소록도 청년들과의 데이트- 시월에 더 아름다운 소록도가을 파도가 소록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맑은 바람이 시월스러워 나무들의 몸짓이 유연하고 익어가는 유자 열매의 탐스런 웃음이 정겹게 다가온다. 길이 멀어 아침에 서둘러 집을 나섰는데도 시계는 벌써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야말로 소록도는 먼 곳에 있는 섬이다. 일곱 번 고속도로를 갈아 탄 후 다시 국도를 한참 달려야 비로소 당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만령당 중턱에서 바라본 소록도 마을 풍경​작은 사슴을 닮은 섬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소록도! 한센인들의 아픈 몸과 흐르는 눈물을 잠잠히 위로해 주며 외롭고 서러울 때 품에 안고 그  삶을 다독여 북돋아 주었던 형님과 언니 같은 곳이다. 지금은 이 섬에 신식 건물도 많고 사람들 표정도 밝아 보이지만, 102년의 세월 동안 만고풍상 속에 숱한 상처와 격변이 끊이지 않았던 가슴 시린 현장이기도 하다.일제 강점기에는 한센인들을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혹독한 노동과 착취를 일삼았으며, 8·15 해방으로부터 한국전쟁을 거치는 과정 가운데서는 오히려 우리 민족에게 극심한 탄압과 집단 학살까지 당했던 슬픈 역사가 이곳에 흐르고 있다. 그 후, 뭍에서는 산업화, 민주화가 속도를 내며 진행되었지만, 소록도 주민들은 보호 격리라는 명분으로 인해 척박한 환경 속에 차별과 불평등을 마치 당연한 생활로 여기며 긴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다. 이미 1992년에 우리나라는 한센병 종결 선언을 했음에도 세상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으며, 2009년 3월에서야 소록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게 되었다. 육지와 직선으로 700m밖에 안 되는 거리를 무려 93년씩이나 걸려서...▲ 추억이 서려있는 소록도 옛 선착장에서... (사진: 이남철)한센병은 후진국형 피부질환에 불과하지만 전염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별도의 장소에서 치료와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병을 얻으면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족과 마을을 떠나야 했다. 표현을 곱게 해서 '떠난다'고 말한 것이지 사실상 한센인 대부분이 버림받은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소록도에 와야만 했던 것이다. 자동차로 달려도 한나절이 모자랄 만큼 먼 길을 악성 괴담과 배고픔에 시달리며, 조롱과 핍박을 등에 진 채로 걷고 또 걸어서 이 섬에 당도하여 그 무거운 인생을 내려놓게 되었던 것이다.가을 파도가 소록도를 쓰다듬으며 잔잔한 음성으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나이 먹은 나무들도 시월의 바람과 함께 아련한 추억 속에 잠겨 드는 듯하다. 아지오의 걸음이 소록도 길을 따라 아늑한 정취를 가슴에 담으며 말동무가 되어 본다.소록도 청년들과 아지오▲ 아지오와 소록도 청년들과 해변에서의 조우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자리하고 있다. 면적은 3,79 제곱킬로미터(약 114만 6천 평)이며 500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평균 연령은 80세가 넘은 지 오래이고, 대다수 주민들이 30년 이상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 때 이 섬에는 6천 명 넘는 주민들이 집단 수용 형태로 살기도 했으나 지금은 한센병 확산이 멈춘 상태여서 고령화와 함께 인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소록도는 1번지와 2번지로 조성되어 있으며, 병원 종사자들이 1번지에 살고 한센인들은 2번지에서 6개 마을로 나뉘어 거주하고 있다. 잘생긴 나무들이 많고 아름다운 길도 많고, 주민들이 몸처럼 아끼는 교회도 많은 곳이 소록도이다.그와 더불어 소록도에는 몇 안 되는 청년들이 살고 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즐겨 타고 스마트폰으로 문화와 정보를 향유하는 사람들이다. 지난봄에 소록도 청년들이 먼 길을 달려 '구두만드는풍경'을 직접 찾아왔다. 다시 시작한 '아지오'가 건강하게 발전해서 멋지게 성공하기를 바라며 축하의 마음을 안고 방문하였다. 생산 현장과 일하는 사원들을 보며 무척 흐뭇해하였다. 마치 자기들의 일처럼 여기며 한껏 '아지오'를 격려하고 돌아갔다. 그들로 인해 소록도에는 '대통령의 구두 아지오' 이야기가 꽃처럼 피어났고 응원의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 아지오를 신은 소록도 청년들...이 청년들 역시 소록도에서 30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이다. 아주 어린 나이에 들어온 사람도 있고, 피 끓는 20대 초반에 병을 얻어 가슴을 치며 이 섬에 들어온 사람도 있다.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많았으며 세상과의 단절에서 오는 자괴감에게 인생 전체를 지배당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래도 소록도 청년들은 참 밝다. 어르신들이 많은 소록도에서 활력소 역할을 하고 부지런히 주어진 일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언제나 손님을 반겨 맞으며 최선을 다해 대접하기에 힘쓴다. 우리 아지오가 소록도 청년들의 넉넉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참 좋고 행복하기만 하다. 어떤 사람의 나이는 56세, 다른 사람은 그보다 조금 많고, 또 다른 청년은 환갑이 내일 모레라 한다. 이렇게 젊디 젊은 청년들로 인해 소록도가 4계절 푸르고 아름다우리라 여겨진다. 소록도는 곳곳이 볼거리로 가득하다. 일반 관광객들이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중앙공원은 멋진 나무들이 많기로 이미 소문이 나있고, 마을과 마을을 끼고도는 여러 갈래의 길들이 참 아름답다. 낮은 산비탈에서 노니는 사슴들과 매혹적인 바다 풍경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비경 중의 비경이다. ▲ 옛날에는 흰사슴이 살았다지요~(사진: 이남철) ▲ 아름다운 소록도 해변에서(사진: 이남철)동네마다 특색 있는 교회의 모양도 만날 수 있으며, 새로 만들어진 박물관과 전시관에서는 소록도 백년사를 한눈에 읽어 볼 수도 있다.한센병은 정말 미운 질병이다. 손과 발을 손상시키는 경우는 다반사이며 얼굴과 시력까지 앗아가는 몹쓸 불청객과도 같은 질환이다. 이 지독한 한센병이 수많은 사람의 삶을 나쁘게 바꿔 놓았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악역을 해온 것이다.소록도의 길과 오래된 건축물들은 손 발이 부자유스러운 한센인들이 직접 닦고 세운 것들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강제 노동에 의해 그 일을 했고 1950년대 말부터는 스스로 교회를 짓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건축물을 세워 왔다. 건강한 사람들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소록도에 산다는 이유로 억지로 또는 자발적으로 해온 것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무 한 그루와 건축물 하나하나가 무척 소중한 느낌으로 다가왔다.2010년 1월에 못 갖춘마디로 시작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냉혹한 세상 바람을 견디지 못하여 결국 3년 9개월 만에 문을 닫고 몹시 아파했던 '구두만드는풍경'이 아니던가? ​백 년 소록도의 고난과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 바다에서 꿈을 낚는 소록도 청년들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름다운 소록도 품 안에서 '아지오'는 겸손히 매무새를 가다듬는다.문대통령과 많은 국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다시 일어선 ‘아지오’이기에 끝까지 견디며 더 노력하여 불편한 현실이 길을 막아서더라도 온 힘을 다해 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반드시 '성공'이라는 목적지까지 청각장애사원들과 손잡고 쉼 없이 가기로 다짐해 본다. 가을 파도가 중매를 서고 '아지오'랑 '소록도'랑 손을 잡으니 시월이 더 근사해 보인다.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꿈이 더욱 튼실하고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제 ‘아지오’에 추운 겨울이 오더라도 전혀 염려가 없다. 견디면 이긴다는 진리와 봄이 되면 새순이 돋는다는 이치를 소록도에서 배웠기 때문이다.아지오 신고 찾아간 소록도가 참 좋다. 따뜻한 가슴으로 맞아준 소록도 청년들이 아주 많이 고맙다. 이 느낌 이 사랑이 영원하기를...​사진으로 만나는 시월의 소록도  ▲ 구북리 길을 따라서... ▲ 신생리 마을로... ▲ 숲속 동성교회를 바라보며... ▲ 바다와 소나무 그리고 시월...(사진: 이남철)
젊은 소록도 청년들 / 소록도 지킴이 / 2018.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