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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9월 그리고 순임씨의 가을

정순임 / 시와 차를 사랑하는 사람 / 날짜: 2019.9.1. / 조회: 98

춘천의 9월 그리고 순임씨의 가을
-찻잔에 아량을 담아 마음을 나누며 사는 정순임씨와의 데이트

  한옥에 사는 순임씨
 춘천시 교동 오르막에 들어앉은 아담한 기와집이 순임씨가 가을 꿈을 꾸는 보금자리다. '선운당, 운여월'이라는 문패가 붙은 나무 대문을 지나면 잔디 마당가에 각양의 화초와 식물들이 가지런하고 오는 9월이 부끄러웠는지 가지에 매달린 사과 몇 알이 얼굴을 붉히고 있다.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기역자로 자리 잡은 한옥이 참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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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시 교동의 정순임씨 집_나무대목을 지나 ㄱ자로 자리잡은 한옥

 "올가을은 제 삶에 있어 의미가 남다르답니다. 제 나이가 육십이니까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거죠." 순임씨가 귀히 여기는 차를 정성으로 우려내며 작은 찻잔에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로 담아 우리에게 건넨다. "제 어릴적 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어요. 하지만..."
  경기도의 끝 강원도의 시작점인 춘천 경강마을에서 2남 3녀 중 맏딸로 태어난 그는, 열세 살 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그 꿈을 접어야 했다. 어머니 혼자 꾸려가는 가난한 살림이기에 공부를 더할 엄두를 못 냈고 일찍 공장에 취업하여 돈을 벌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큰 탓에 갈등이 많았으나 진한 신앙심으로 이겨 나갔다. 그 와중에 순임씨의 인생 항로에 변곡점이 나타났다. 어느 젊은 신학생이 전보와 편지 공세를 퍼부으며 순임씨를 신부 삼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애를 해온 것이다. 철몰라 흔들리던 소녀에게 이런 상황은 마치 숙명처럼 느껴져 남자가 좋아한다면 당연히 그 뜻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임씨는 열아홉 살 10월 28일에 때 이른 결혼을 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사랑보다 아픔이 먼저였고 바라던 행복은 혹독한 고생으로 다가와 마음에 상처를 가져다 주었다. "저의 결혼생활은 가난과 비극의 연속이었어요. 아이를 둘 낳아 기르며 계속되는 배고픈 나날도 힘겨웠지만 가정에 충실하지 않고 다른 데에 마음을 둔 남편 때문에 한숨과 눈물이 끊이지 않았어요." 결국 순임씨는 무책임하게 가정을 버린 남편과의 13년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선물처럼 잘 커준 아이 둘과 서울 어느 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 가게 된다. 낮은 목소리로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와 비우면 다시 채워지는 찻잔 속에서 그 시절의 아픔들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푸른 계절에 일구어 얻은 보물들
 순임씨 인생의 봄날은 가난과 아픔 그리고 고생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견디고 해쳐서 나이 서른넷에 남편을 떨쳐 버리고 아이들과 또 다른 삶을 열 수 있었던 그에게는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맞이한 인생의 여름 이야기를 더 들어 보기로 한다.
  "친정 엄마에게 2백만원을 빌려 아이들과 서울 살림을 시작했어요. 한 부모 가정이어서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는 조리사 훈련을 받을 수 있었고 남달리 좋은 기회를 얻어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에 청와대로 들어가 식당에서 일하는 기능직 공무원이 되었답니다. 고정급도 받고 임대 주택에도 입주하면서 훨씬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초등학교 6학년 딸이 탁구 국가대표가 되어 전국 대회를 휩쓸면서 덩달아 저도 대표 선수의 대우를 받는 호사를 누렸답니다." 순임씨의 지나간 봄이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 시기였다면 인생의 여름은 행복이 무성한 푸른 계절이었다. 그래서 순임씨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한적십자사가 운영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봉사활동에 참여하여 열심히 시간과 목소리를 나누어 가졌으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 많은 시각장애인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선하게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을 다 키워 놓고 마흔일곱 살에 신촌에 있는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중학 과정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여서 그런지 매일 매일이 즐거웠고 얻는 지식이 늘 새로웠습니다." 만학이었지만 설렘과 열정이 가슴 가득이어서 무려 11년에 걸쳐 대학 과정까지 멋지게 마쳤고 한자 1급 자격 취득을 넘어 문예지에 등단과 더불어 시 낭송가 활동까지 순임씨의 삶은 긍지와 보람이 주렁주렁 황금빛 열매로 장식 되었다. 

  ​더 근사한 이슈는 친구의 중매로 교육청 장학사로 재직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고향 춘천에 한옥을 마련하여 알콩달콩 정을 나누고 있는 풍경이다. 그야말로 인생의 푸른 계절에 온갖 보물을 소유한 큰 부자가 바로 정순임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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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순임씨 마당에 자리한 사과나무와 배나무, 그리고 여러 화초들


  수녀화를 건강화, 효도화라 부르면 더 좋을 텐데...

  순임씨와 아지오의 관계는 특별하다. 구두만드는풍경의 시작이 파주였고 순임씨도 파주에 살고 있었다. 그의 장애인 사랑은 남달라서 꼭 필요할 때 조용히 힘을 보태 주면서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응원했다.
 구두만드는풍경의 첫 작품은 수녀화였다.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회사를 창업하자마자 충남 공주의 어느 수녀원에서 첫 주문자로 나서 주었다. 수녀들이 많이 걷고 오래 서있기 때문에 가장 편하면서 가볍고 견고한 신발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얼핏 들으면 쉬운 요구로 들리지만 신생 회사의 첫 주문치고는 매우 어려운 요구였다. 우리 기술과 노력 그리고 정성을 모두 동원했지만 그 요구의 벽은 진짜 높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해서 다섯 번 퇴자를 맞고 천신만고 끝에 결국 수녀원에 300켤레를 납품하는데 성공했다. 이 일로 인해 우리의 기술력과 품질이 큰 발전을 얻는 계기가 되었으며 소비자의 눈높이를 읽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수녀원에서 지금의 아지오가 바로 서도록 정신적 스승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이 신발 제작에 자신을 얻은 우리는 전국의 수녀원을 대상으로 홍보 전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임씨가 푸짐하게 간식을 사 들고 우리를 찾아와 진열되어 있는 수녀화를 발견하고 한번 신어 보더니, "이렇게 편한 신발을 제가 찾고 있었어요. 허리 수술을 해서 아무 신발이나 못 신거든요. 이 신발의 이름은 뭔가요?"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대답이 "수녀화입니다."라 하니, "이 신발을 수녀화라 말고 건강화 또는 효도화라 부르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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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아지오 시즌1 건강화를 신고 소양강을 찾은 정순임님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바를 순임씨가 걸맞는 이름을 지어 판매아이디어로 제공해 준 것이다. 그 때부터 그 수녀화는 건강화 또는 효도화로 불리었고 아지오 시즌1에서 중년 여성들에게 각광을 받는 상품이 되었다. 2010년 봄에 흐뭇하게 건강화를 구매한 순임씨는 무려 9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신발을 애용하고 있다. 새로 장만한 'AG7004' 슬립온도 애지중지하며 열심히 춘천 사람들에게 자랑한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든든하고 고마운 응원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순임씨와 아지오는 복된 인연 아름다운 관계 특별한 이웃이다.


 춘천의 9월 그리고 순임씨의 가을
 해질 무렵 소양강 어귀에 깃든 가을을 본다. 물빛 하늘빛이 9월이다. 남춘천역에 내린 서울 손님들이 춘천의 가을을 얘기한다. 순임씨가 사는 기와집 마루에 벌써 늙은 호박 몇 덩이가 몸을 맞대고 있다. 화초와 나무들을 쓰다듬는 순임씨의 모습에서도 가을빛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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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루에 놓인 꽈리와 호박들, 꽈리를 만지고 있는 정순임님


  "처음에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차를 마시기 시작해서 지금은 한국차, 중국차, 꽃차를 공부하여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르치며 함께 차를 나누지요. 차에 어울릴 만한 한과와 떡이 필요해서 떡과 한과를 만드는 솜씨도 익혔어요." 차와 한과를 나누며 순임씨의 봄, 여름, 가을 인생 여정도 듣고... 그러다 보니 각박하고 치열한 세상사가 저만치 멀어지는 듯하다. "시를 쓰고 낭송하는 사람들이 우리 집 마당에 모여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지요. 그럴 때가 참 좋아요." 사람을 좋아하는 순임씨는 오늘도 값나가는 차와 고급스런 한과를 갖추어 놓는다. 누구라도 찾아오면 융숭하고 다정하게 아량을 담아 베풀고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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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수 준비한 다과상과 차를 우려 내는 정순임님


  춘천의 9월은 순임씨를 닮았고 순임씨의 가을은 춘천에서 행복하게 영글어 간다. 가을빛이 아름다우니 겨울이 와도 사랑이 따뜻하리라.
  서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우리에게 순임씨가 스스로의 삶을 운유로 다듬은 시 한 편을 건넨다. 행복한 가을을 누리는 순임씨의 귀한 마음이기에 여러분과 더불어 음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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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삼덩굴: 훼손된 들에 흔하게 자라는 덩굴성 한해살이 풀로 며느리 밑씻개 풀이라고도 한다. 잎 가장자리에 규칙적인 톱니가 있고 양면에 거친 털이 나 있다.

▲ (좌) 정순임님의 환상덩굴 시화, (우) 유석영대표에게 환삼덩굴 시를 낭독하고 있는 정순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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