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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와 함께 울고 웃었던 50년

이기노 / 구두장인 / 날짜: 2019.10.10. / 조회: 82

구두와 함께 울고 웃었던 50년
-아지오의 마이다스 손, 이기노 사원과의 데이트

  망치소리와 트로트

  구두만드는풍경의 사원은 모두 19명이다. 생산을 담당하는 사원 13명과 경영과 마케팅을 지원하는 6명이 열심을 다해 일한다. 스무 살 숙녀에서 일흔둘의 어르신까지 사원들 세대의 폭이 넓고 개성과 취미도 매우 다양하다. 오롯이 구두 밖에 모르는 안승문 공장장, 평소에 조용하다가도 이따금씩 버럭하는 전경수 공장장, 일찍 출근해서 궂은 일 도맡아 주는 이용만 반장, 60대 소녀 이정숙님, 엷은 미소로 마음을 보여 주는 김상진님, 말이 빠르고 몸이 앞서는 임택운님...
  생산 현장에 들어서면 독특한 가죽 내음, 모양이 제각각인 발틀, 공정에 따라 놓여진 장비와 재료들, 우아한 곡선과 맵시가 아름다운 아지오 구두 여러 켤레가 부지런한 손끝에서 완성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정해숙님의 환한 인사가 반갑고, 김영길님, 조순옥님, 전수연님의 능숙한 포장 솜씨와 10층 현장에서 5층 창고를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내리는 윤석구님, 고객관리와 상품 배송을 돕는 이상무님 그리고 사무실과 생산 현장을 바삐 드나드는 경영지원부 사람들까지, 매일매일 활기와 분주함이 계속된다. 아침 회의시간은 모두 진지하지만 간식시간에는 만면에 화색이 돈다. 
  맞춤 수제화 아지오는 청각장애인의 사랑과 정성이 배합되어 만들어 진다. 먹는 음식이 손맛에 따라 차이가 나듯, 구두 역시 손맛이 매우 중요하다. 손으로 말하고 손으로 일하는 청각장애인들의 손맛은 좋은 구두를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장점을 가졌다. 그래서 아지오 구두가 편하고 품질이 좋기로 널리 알려진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시나요?
  아침 8시 50분에 시작된 회의가 끝나면 생산 현장의 망치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따금씩 공장장의 말소리가 들려올 뿐 청각장애사원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일도 손으로 하지만 수다를 떨 때도 손으로 한다. 그런데 오전 11시가 다 될 무렵, 트로트 노래가 망치소리에 섞여 들려오기 시작한다. 분명히 청각장애사원들이 일하는 아지오 생산현장에서 나는 소리다. 살며시 다가가 귀 기울여 보니 우리 회사 최고령의 이기노님이 볼륨을 높여 놓은 트로트 음반이었다. 본인의 집안에 작은 시설을 갖추고 반주를 다운 받아 자기가 직접 노래를 불러 제작한 음반이었다. 기성 가수 못지않게 수준 높은 노래 실력을 가진 그가 왜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청각장애인들의 일터에서 트로트 노래를 들으며 아지오 구두를 만들고 있는 이기노님의 신상을 탈탈 털어 보기로 했다.


시계를 72년 전으로 돌려서...

  이기노님은 세는 나이로 72세다. 하지만 그의 나이는 만나는 사람과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어느 때는 73세, 우리 동료들과의 자리에서는 72세, 안승문 공장장은, " 형 나이가 74세 맞지?" 라고 한다. 탄력이 좋은 고무줄로 나이를 동여 맺는지...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으로 전북 정읍으로 피난하여 성장한 그는 여섯 살 무렵 친구들과 놀다 넘어져 왼쪽 고관절을 심하게 다치고 만다. 당시 병원이 흔치 않아 무자격 접골원에서 비과학적인 시술을 받다 1차 피해를 입었고 한의원에서 굵은 침을 잘못 맞아 좌골신경 손상으로 2차 피해를 당해 지팡이 없이는 걷기 어려운 장애를 갖게 되었다. 가난한 집안 살림이라 더 이상 어찌 하지 못하고 양 손에 지팡이를 짚어가며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지독한 가난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큰아들인 그가 장애를 가졌지만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이기노님은 곧바로 혼자 서울로 올라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노점상과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2년 후에 고향에 있던 가족들을 서울 금호동으로 불러 올렸다. 막노동을 하던 그의 아버지가 장애를 가진 아들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다져 주기 위해 추천한 분야가 구두 만드는 기술이었다. 조금 규모가 있는 양화점에서 장인에게 풀칠하는 법으로부터 숙련된 기술을 익힐 때까지 약 3년간 용돈 수준의 급여를 받아가며 과정을 통과하여 견습생 딱지를 떼게 되었다. 그 후 서울 성수동 노룬산 시장에 있던 양화점에 취업하여 짭짤하게 돈을 벌었고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에, 미싱사로 일하던 여섯 살 연하의 직장 동료에게 끈질기게 구애하여 처가의 극렬한 반대의 벽을 뛰어 넘으며 결혼에도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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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성남에 둥지를 틀고 부지런히 재산을 불리며 아들도 낳고 양화점도 아내와 함께 경영했다. 그러는 동안 대형 구두 메이커들이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시중에 상품을 내 놓으면서 사업이 위축되어 결국 21년 고락을 같이 했던 양화점 문을 닫아야만 했다. 뒤이어 도급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 취업하여 다시 일을 하다가 약간의 공백기를 지나 우리 안승문 공장장과의 오래된 인연으로 2018년 1월에 구두만드는풍경 최고령 사원으로 입사하여 청각장애인들과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50년 숙성된 기술과 재능을 청각장애사원들과 나누어 가지며 매우 즐겁게 아지오구두를 만들고 있다. 젊디젊은 마음으로...


  이기노님이 트로트를 부르는 까닭은...?

  그의 목소리는 나이에 비해 미성이다. 반주에 맞춰 부르는 그의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청순함과 흥겨움이 그대로 느껴진다. 좀 더 심취해 보면 아픔과 고생이 들어있고 견딤과 기쁨도 가슴에 와 닿는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설상가상으로 떠안은 장애, 그로 인한 친구들의 놀림들... 괴로움이 적지 않아 좌절과 포기 사이에서의 갈등이 많았으리라. 그래도 그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했고 스스로 노력하여 지팡이를 버리고 혼자 걷는 투지를 보였다. 구두쟁이의 삶에서도 부지런함과 열정으로 양화점 사장의 위치를 지켰다. 하지만 또 다른 시련의 그림자는 오랜 시간 그와 그 아내를 짓눌렀다. 건강하게 군 생활을 하던 큰 아들이 선임병의 위협과 폭행의 충격으로 우울증, 조현병, 당뇨 등의 합병증으로 20년 넘게 투병생활을 했고 그 자식을 뒷바라지 하느라 청춘이 새까맣게 타 버렸다. 3년 전에 그 아들을 앞세워 천국으로 보내고 지금은 아내와 작은 아들을 알뜰히 살뜰히 챙기며 소확행을 누린다. 주말에는 연로하신 처 고모를 보살피는 일과 아내와 맛집 기행을 하며 정을 나누고 알콩달콩 행복을 만들어 간다. 이기노님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 어린 시절 멋모르고 장애인이라 놀려대던  초등학교 동창생들과의 기분 좋은 모임이다. 남자 40명, 여자 18명 동창들이 전세버스를 타고 여행도 가고 색다른 모임을 가지면서 우정을 나누는 일이다. 서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가 트로트를 부르는 까닭은 노래로 인생을 찬찬히 추억하고픈 마음일 것이다. 고생과 아픔도 네 박자에 싣고 기쁨과 행복은 흔들고 잘 꺾어 환하게 마이크에 담아 크게 확성해 보려는 바람이라 여겨진다. 벌써 300곡에 가까운 트롯트 곡을 연습하고 다듬어서 음반에 실어 놓았다고 한다. 이 노래들이 아지오 구두 한 켤레 한 켤레에 베어 들어 고객들의 걸음과 함께 하리라 믿는다.


  구두와 웃고 구두와 울었던 50년

  1970년대 말에 있었던 일이다. 이기노님이 사업장 이름을 '허리우드양화점'으로 간판을 걸고 영업을 했는데 당시 우리말 쓰기 운동을 장려하던 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이 찾아 왔었다. 그 이유는 '허리우드'라는 말이 외래어이므로 우리말로 바꾸기를 권하기 위해서였다. 간판을 새로 하면 돈이 쏠쏠하게 들을 거 같아 이렇게 둘러댔다고 한다. "소의 가죽 중에 허리부분이 제일 좋아서 소 우자를 뒤에 붙여 허리우드로 지었다."라고 변명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유명 구두회사 명칭으로 간판을 걸었다가 명의 도용으로 개선명령을 받자, 역시 간판 설치비용이 아까워 '강'자를 '광'자로 살짝 고쳐 무사히 넘어간 일도 있었다. 재치와 익살이 철철 넘치기도 하는 이기노 사원!
  구두만드는풍경에서의 이기노사원은 청각장애 사원들에게 구두의 기초를 가르치는 스승의 역할과 중요한 지점에서 경험적 지식을 제공하는 보험회사의 기능을 한다. 처음에는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많이 당황하는 모습을 왕왕 보았는데 이제는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사원들을 다독이며 재미있게 작업을 한다. 청각장애 사원들도 그를 잘 따르며 이렇게 저렇게 아버지를 받드는 심정으로 챙기며 호흡을 맞춘다. 구두와 함께 웃고 구두와 함께 울었던 기노 사원의 삶이 생산현장 곳곳에 묻어 있다. 무관심한 듯 하면서도, 걱정하고 야단치는 듯 하면서도 정을 주는 느낌이 전류가 되어 흐른다.
  아직도 아지오가 넘어야 할 산은 높고 가야 할 길이 멀다. 방법과 비용만으로 다 해결할 수 없고 자본과 아이디어만으로도 냉혹한 시장을 이겨내기 어렵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과 고객들의 소중한 요구를 읽을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지혜가 더 많아야 한다. 하루하루 노력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며 백년을 이어갈 내공을 쌓아 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아지오는 50년 이기노 사원의 기술과 경험과 지혜를 무척 존중한다. 눈물과 웃음도 빌려 쓰고 익살과 재치도 응용하며 친구처럼 편한 구두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청각장애인들의 행복한 내일이고 고객들의 건강과 성공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기노 장인님, 앞으로 쭈욱 아지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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