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o Journal

젊은 박사가 사회적경제를 일구어 간다.

이은선 / 교수 / 날짜: 2019.11.10. / 조회: 359

젊은 박사가 사회적경제를 일구어 간다
- 국립 경남과학기술대학 이은선 교수와의 가을 데이트 -

진주에서 온 특별한 손님

 목련꽃 하얀 송이가 하나 둘 봄 속에서 피어나던 날에 우리 회사로 고운 손님이 찾아 왔다. 젊은 여성이 다 늦은 저녁에 멀리 진주에서 구두를 맞추기 위해 귀한 손님으로 온 것이다.
 "저는 특별한 구두를 주문하고 싶어서 이곳을 찾아 왔습니다. 남성들이 신는 정장 구두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것이었다. 아담한 체형에 발 길이도 작은 편에 속하는 여성이 남성용 정장 구두를 주문하여 우리는 조금 의아했다. 보통의 여성들이 가능하면 신발이 커 보이는 걸 꺼려하는데 무슨 이유로 남성화를 원하는지 사뭇 궁금했다. 군인도 아니고 격한 운동을 하는 스포츠 선수도 아닌데...
 “손님은 발이 작아 남성 구두를 맞추기 쉽지 않습니다. 남성화의 창은 길이와 넓이가 커서 손님 발에 맞춰 만들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여성 구두를 조금 커 보이게 만들어 드리면 안 될까요?”공장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절충안을 냈으나,“그럼 여성화 창에 남성화 디자인을 얹어 만들어 주세요.”라고 본인의 요구를 더 선명하게 말했다. “제가 진주에서 아지오 구두를 맞춰 신으려고 왔으니 제 부탁을 꼭 들어 주세요.”먼 데서 찾아온 손님의 부탁인지라 공장장은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의 주문을 수용하기로 했다. 어떤 신발이라도 만들 수는 있지만 이 경우에는 규격과 모양이 반비례하여 예쁘지 않을 수도 있어서 공장장이 머리를 긁적였던 것이다. 저 남녘 진주에서 잰걸음으로 달려온 특별한 손님이기에 생산부서에서는 몇 날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결국 그 구두를 만들어 보내 주었다.

 어느덧 계절은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의 끝 무렵을 지나고 있다. 여러 일들과 많은 추억이 쌓이는 낙엽만큼 수북하다. 그간 아지오와 인연을 맺은 손님들의 수도 많이 늘었다. 모두가 소중하고 고마운 인연이어서 감사하는 마음이 해처럼 커졌다. 그러다 문득 지난봄에 남성화를 맞춰 신은 특별한 여성 손님이 떠올랐다. 그 구두가 잘 맞는지, 모양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주소는 국립 경남과학기술대학이었고 이름은 이은선, 신분이 경제학과 교수라는 정보를 들고 가을 고속도로를 달려 그를 만나기 위래 길을 나섰다. 특별한 손님이므로 특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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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교수와의 인터뷰


무용을 좋아했던 은선이가...

 이은선은 무용과 사물놀이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은선이가 좋아서 재미있고 즐겁게 한국무용과 사물놀이로 초․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은선이는 예고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무용인의 꿈을 실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탄탄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IMF금융 위기에 동업자들의 고의 부도와 등 돌림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면서 그 꿈을 접어야만 했다. 심한 좌절감에 빠졌지만 실패한 아버지가 신의와 성실의 자세를 잃지 않고 막노동을 해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은선이는 이를 악물었다. 가난한 고교 시절을 교과서를 몽땅 외우는 방식으로 공부해서 틈틈이 쌓아둔 자원봉사 점수를 보태 고3 6월에 수시 전형으로 경희대 경제학과에 입학을 하게 된다. 예․체능에 대한 미련 때문에 대학 입학 후 약간의 방황과 학생운동에 참여하던 시기를 지나 논문이 지닌 힘을 깨달은 다음부터 학문의 세계로 접어드는 은선이! 고려대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하며 사회적경제가 지닌 매력을 발견하고 석사와 박사 논문 모두를 이 분야를 주제로 쓴 최초의 인물로 그 이름이 빛을 발하게 된다.
 1983년생 이은선은 한국무용의 꿈을 한국의 사회적경제 분야로 승화시켜 정책의 바탕이 되는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한 젊은 학자로 우뚝 섰다. 그리고 지금은 유학파가 아닌 순수 국내 박사로 국립 경남과학기술대의 2년차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며 끊임없이 논문을 생산해내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과학 분야의 교수 임용 연령이 평균 44.8세로 나타나는데 지금의 이은선 교수의 나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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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선 교수의 석사 및 박사학위 논문과 명함


아버지의 딸 이은선 교수

 이 땅에 사는 자식들 모두에게는 아버지가 있다. 좋은 아버지, 자상한 아버지, 멋있는 아버지, 무서운 아버지, 든든한 아버지, 고생하는 아버지, 사랑하는 아버지...!
 이 교수에게 아버지는 버팀목이며 삶의 지표였다. 어릴 적에는 유망한 중소기업 사장님이셨고, 중학시절 큰아버지라고 부르던 사람들에게 전 재산을 날렸을 때는 서슴지 않고 일용직 노동자로 가족들을 지켜 주셨다. 대학시절 이교수가 약간의 방황과 학생운동 현장에서 잠시 흔들릴 즈음, 아버지는 폐질환으로 쓰러지시며 가족들을 놀라게 했고 그로 인해 이 교수는 강한 책임감을 얻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스스로를 세워 나갔다. 그 뿐이 아니었다. 이 교수가 대학 4학년 되던 해에 아버지는 위암 판정을 받아 다시 투병생활을 이어 가야 했다. 꿈꾸던 해외유학은 언감생심, 그저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시덤불을 헤쳐 나가야 했던 이 교수는 더 강한 의지로 전문 분야를 파고들어 석사 과정을 무난히 마치고 나이 스물일곱에 박사 과정에 도전한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5년 투병생활을 잘 벗어나 1차 완치 판정을 받았고 그리고 5년 후에 이 교수가 박사학위를 받던 해에 아버지는 위암에서 완전히 이겨냈다는 판정을 받아 내셨다. 그간 뒤에서 눈물을 감추며 고생하신 어머니가 계셨기에 이 모두가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오늘의 젊은 이 교수는 말이 아닌 몸과 행동으로 긍정의 시그널을 선물로 주신 아버지의 딸이다. 좁은 길도 외로움 타지 않고 다른 방향에서도 근거로 맞서며 어려울 때도 물러서지 않는 뚝심이 아버지의 딸이기에 하나하나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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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아버지와 함께


이은선 교수가 남성화를 신는 이유는?

 이 교수는 지난봄에 특별히 주문하여 만든 아지오 구두를 자주 신는다. 여성화 창에 남성화 디자인을 얹은 그 신발이 생각보다는 잘 어울렸다. 그는, “중요한 행사나 주제 발표가 있을 때면 꼭 이 구두를 신습니다.”라고 한다. “이유가 따로 있는지...”물으니, 이공계열은 실험이나 연구 결과물을 통해 입증이나 주장이 가능하다. 그런 반면에 사회 과학은 역사성에서 각각의 현상 그리고 이념에 이르기까지 연륜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이론을 중시 여기는 경향이 농후하다. 즉 내용이나 연구 과정이 아닌 서열 중심의 풍토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젊은 이 교수는 연륜이 짧고 경험도 적은데다 여성이라는 조건에서 이런저런 차별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고 한다.  교수의 반열에 든 지금에도 왕왕 그런 일이 있어 생각을 바꾸었다고 한다. 남성복 스타일의 바지를 입고 신발은 거기에 맞춰 강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남성화를 신는다는 것이다.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되어 여성으로서 발표와 주장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이러한 현실은 이은선 교수가 더 왕성하게 활동함으로써 곧 해소되리라 믿는다.
 이 교수는 가치 있는 사회적경제를 위해 가르치는 일과 더불어 학생들과 함께 현장에 나가서 사회적경제 확장을 위한 노력을 계속 해 나간다. 그리고 되도록 사회적경제 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구매하는 습관을 바탕으로 그 제품들의 판매 촉진을 위한 고민도 끊임없이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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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목련꽃 하얀 송이가 피어날 때 진주에서 온 특별한 손님을, 아름다운 가을에 진주에 와서 다시 만나니 국화꽃 닮은 반가움과 근사하게 펼쳐질 사회적경제의 청사진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사람이 미래라는 말처럼 이은선 교수는 우리나라 사회적경제의 미래임에 틀림없다. 연륜도 경험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참신하고 역동적인 젊은 생각이 더 필요할 때다. 유명 학술지에서 각광을 받은 이은선 교수의 논문들이 이제는 착한 사회, 공정한 경쟁, 아름다운 나눔을 위해 그 역할을 해 주리라 믿는다. 또 하나의 바람은 이교수가 맵시 있고 곡선이 예쁜 구두를 웃으며 신고 다니기를 아지오 가족들이 기원해 본다.

  올 가을은 이은선 교수로 인해 무척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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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정에서


- 이은선 교수가 전해주는 편지:

AGIO에 대한 나의 생각

한참 박사과정 공부를 하던 중이었으니 2011년 아니면 2012년의 일이다. 사회적기업을 검색하다가 한 블로그에서 구두를 만드는 장애인작업장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님이 절절하게 제품을 홍보하는 글을 읽었다. 청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일할 때 의사소통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구두를 만들어 오신 기술자님께 하나하나 배워가며 정성으로 구두를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작업장이 위치한 지역과 블로그의 지역은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적기업의 로고가 눈에 띄었다. 사회적기업들이 얼마나 홍보와 판로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특히 취약계층을 고용하고 계신 사회적기업들이 얼마나 힘들게 기업을 운영하고 계신지 알고 있는 나는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가슴 찡함을 느꼈다. 백화점에서 판촉행사를 하는 부분이 강조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어렵게 기회를 잡으셨구나, 이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하시는구나.. 절박함이 느껴졌다. 한편으로 백화점 판촉행사에 참여할 정도면 다른 사회적기업에 비해서는 형편이 좋다고도 생각했다.
수년 뒤, 나는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 기업을 기사로 접하게 되었다. 대통령의 구두. 다른 곳에 비하면 형편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기업은 1-2년 뒤 폐업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대표님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수년 전 블로그에서 봤던 그 홍보 글이 정말 절박했던 것이었구나.. 그때 가서 한 켤레라도 살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죄송했다. 청각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어렵게 의사소통하며 기술을 배우고 그 기술로 제품을 완성했을 때 얼마나 성취감을 느끼셨을까,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까, 얼마나 보란 듯이 기업을 성공시키고 싶었을까..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은 아직도 장애인이 생산한 제품은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편견, 브랜드가 아니면 외면하는 소비문화 때문에 이 소중한 사회적기업이 문을 닫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수개월이 지나 AGIO라는 이름으로 다시 일어섰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번에는 꼭 가서 한 켤레라도 구매하고, 또 만나서 진심으로 응원해드리고 싶었다.
내가 AGIO를 응원하는 이유는 아직도 뇌리에 박힌 "청각장애인의 꿈"라는 문구 때문이다. 어느 블로그였는지 아직도 기억은 나지 않지만 "청각장애인의 꿈"이라는 제목은 정확히 기억난다. AGIO는 단지 청각장애인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청각장애인들이 명품을 만드는 장인으로 성장하도록 꿈을 심어주고 꿈을 키우게 하고, 꿈을 실현하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AGIO의 한분한분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고, 그 꿈이 현실이 되고 확산되어 더 많은 분들이 꿈꾸고 한발 한발 나아가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또한 AGIO와 함께, 우리사회의 수많은 사회적기업들과 함께 꿈꾸고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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