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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gio
아지오를 소개합니다.
Agio Journal
아지오를 신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사명, 그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그 사명, 그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인천 송현성결교회 조광성 목사와 함께 한 축복의 시간언덕 위에 좋은 집인천시 동구 화도진로 44번길 37에 자리한 송현성결교회를 찾았다. 동네가 한눈에 들여다 보이는 언덕 위에서 듬직한 모습으로 창립 90주년을 맞는 중견 교회다. 오랜 세월 동인천지역과 함께 울고 웃으며 믿음 속 사랑을 다져온 흔적이 곱게 나이든 신도들의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송현동 사람들에게 세련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며 손 내밀어 외로운 마음들을 보듬어 왔다. 또한 구석구석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는 일에 부지런하여 선한 이웃으로서의 역할을 넉넉히 담당해 온 언덕 위의 좋은 집이다. 이런 송현성결교회와 우리 구두만드는풍경이 매우 친한 관계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잘 모를 것이다. 송현성결교회는 동인천에 있고 우리 회사는 성남에 있는데, 게다가 그 쪽은 교회이고 구두만드는풍경은 기업인데 무슨 이유로 가까워졌는지 조금은 궁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송현성결교회 앞에서​​그래서 오늘은 19년째 이 교회에 시무하는 조광성 담임목사를 만나 아지오와 친구가 된 사연과 사명자로서의 목회 철학도 들어보고 함께 일구어갈 구두만드는풍경의 미래를 스케치해 보기로 했다. 조목사 근처에 다가서면 나눔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배려와 섬김의 습관이 그대로 나타나는데,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이고 어떤 삶을 살았기에 70을 바라보는 지금에도 여유가 풍부한지 들어 보기로 한다.​-송현성결교회 조광성 목사​크리스마스에 찾아온 손님작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월요일 오후였다. 보통의 고객들과 마찬가지로 중년의 부부가 맞춤 아지오 구두를 구매하고자 우리 회사를 찾았다. 발을 재고 원하는 모델도 정한 후에 남편이 특별한 이야기가 있으니 대표에게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다. 찻잔을 앞에 놓고 부부와 마주 앉으니,"저는 목사입니다. 인천에 있는 송현성결교회를 담임합니다. 제가 '유시민의 알릴레오'팬입니다. 며칠 전 유이사장께서 조수진 변호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구두를 드리는 방송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제 느낌에 얼른 아지오를 찾아가 아내와 나란히 구두를 사 신고 우리 교회에 여기 사원들 모두를 초청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성탄절을 맞아 조목사의 방문은 냉정한 시장에서 쩔쩔매는 우리에게 손님이 아니라 귀한 선물이었다. "우리 교회가 기도하며 준비할 테니 아지오도 잘 준비하여 2020년 4월 19일에 전 사원이 교회로 방문해 주세요." 라고 초청을 약속했다. 1,200명의 교인들과 아지오가 하나 되자는 조목사의 제안이었다. 이 일로 우리 사원들은 잃었던 생기를 찾았고 가슴에 작은 기대도 품에 안았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올 1월초에 조목사는 30여명의 교인들과 새해 선물을 푸짐하게 안고 찾아와서 즐겁게 예배를 드리며 기쁨을 나누었다. 청각장애인들과 처음 가져보는 시간이어서 서로가 약간의 생소한 느낌은 있었어도 좋아하는 마음은 표정과 몸짓에서 예쁘게 표현되고 있었다. 가교로 나선 조목사로 인해 송현성결교회와 구두만드는풍경이 형제자매가 되어 오래오래 애정을 주고받는다면 이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연인의 모델로 남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사명을 짊어지고 걸어온 30년조광성 목사는 1954년생이다. 올해로 만 66세가 되었다. 서울 토박이로 선친이 한국은행과 금융관련 고위직에 재직하여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어서 생활 속에 늘 예배가 있었고 올바른 크리스천의 정신과 자세를 지닐 수 있었다. 그의 꿈은 방송인이었다. 음악을 전공하여 프로그램과 평론을 즐겁게 진행하고 싶었다. 고생과 굴곡을 모르며 자란 조목사에게 당연히 이루어지리라는 그 꿈이 무산되고 준비했던 유학의 길도 막히면서 이런저런 시련이 찾아 왔다. 한술 더 떠 운영하던 음악학원에 불이 나서 크게 상심하기도 했다. 조목사는 이 과정을 겪으며 하나님의 강력한 부름을 깨달았고 결국 성경에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길을 가기로 작정을 했다. 또한 조목사는 결혼 10년 전부터 자녀의 입양을 결심했다. 첫 아이는 배 아파 낳기로 하고 둘째는 첫째의 성에 맞춰 가슴으로 낳아 기를 것을 스스로 다짐했다. 결국 조목사는 결혼하여 첫 딸을 아내의 배앓이를 통해 얻었고 둘째는 다섯 살 난 여자 아이를 입양해서 양육하였다. 아빠가 목사요 엄마가 교사라는 안정된 조건 때문에 남들에 비해 양육 부담이 큰 아이를 입양함으로써 가정에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25년간 편한 날 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았지만 조목사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 아이를 책임져야겠다는 각오로 함께 고생하는 아내를 위로하며 인내와 사랑으로 둘째딸을 길러냈다. 지금은 그 딸이 출가하여 아들 딸 낳아 잘 살고 있어 조목사에게 새로운 기쁨을 안겨 준다.조목사의 아내 사랑은 남다르다. 고생을 사서 하느라 아픔이 컸던 아내를 위해 수시로 팔 다리를 주물러 주고 아무리 바빠도 집안일을 도와주며 값지고 소중한 선물을 때와 의미에 맞춰 안겨 준다. 새벽 4시에 시작된 일과가 저녁 10시에 끝나는 강행군 가운데서도 아내와 교회와 이웃을 돌보는 일에 한 치의 오차가 없다. 그로 인해 권위는 있되 권위적이지 않고 규모가 크지만 사치스럽지 않으며 어려움이 있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사명을 짊어진 조목사의 30년 목회 철학, 뚝심, 열정이었다.-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조광성 목사의 꿈, 아지오의 융성...은퇴 후 조목사의 시간표를 물었다."저는 은퇴하면 편히 쉬면서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일을 해야 하는  지금 방전이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인생의 2모작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하고 상당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조목사는 생각이 다르다. 주어진 시간 맡겨진 사역에 온 힘을 쏟고 쉬라는 시간에는 여지를 두지 않고 쉰다는 계획이다. 또 새로운 일을 하면 후배들이나 다른 분야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래도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험지에서 사역하다 돌아온 선교사들의 이동을 돕는 일과 아지오 구두를 배달하는 무보수 사원이 되고 싶습니다. 이 역시 상대방이 원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얼핏 조목사의 말이 가볍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의 의지와 각오는 선이 분명했다. 특히 그는 지금의 구두만드는풍경이 어렵게 일하는 모습을 보며 매우 안타까워한다. 우리 회사가 원한다면 조목사는 은퇴와 동시에 트럭을 장만하여 직접 배달에 나서겠다고 말한다. 조목사의 아지오에 대한 그 마음에 가슴이 뭉클하고 무한 감사의 마음이 느껴진다.오늘도 조광성 목사는 송현동 언덕에서 동네를 내려다보며 꿈을 꾼다. 연로한 어르신들의 평안과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아파하는 사람들 그리고 실패하여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발 벗고 나서서 진한 사랑을 쏟아 부울 기회를 찾고 있다. 그 일이 바로 하늘이 주신 사명이요 책무이기에 쉼표 없이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려는 것이다. 그 사명, 그 열정에 우리 구두만드는풍경이 전폭적으로 지지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송현성결교회 앞에서
조광성 / 목사 / 2020.2.10.
꽃처럼 아름다운 마무리 & 자유로운 시작
꽃처럼 아름다운 마무리 & 자유로운 시작- 전 경기도교육청 오문순 국장과의 새해 데이트가정으로 돌아온 문순 씨 -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모두 행복한 새해이기를 바랍니다. 아지오 가족들도 건강하여 더욱 번영하기를 응원합니다."온유한 표정에 다정한 목소리를 지닌 문순 씨가 드리는 새해 인사다. 격이 있는 업무 공간이 아닌 그의 집에서 반갑게 우리를 맞으며 푸짐한 덕담을 주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살림살이가 눈에 들어왔고 집안 곳곳에서 화목의 내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이사관이면 3급에 해당하는 고위 공무원이어서 문순 씨네 가정은 조금 특별하리라 생각했는데 그 집에서는 평범한 중년 부부와 딸 둘이 마냥 행복하게 사는 보통스러운 풍경 외에는 별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짧지 않은 공무원의 길에서 가정으로 돌아온 문순 씨가 앞치마를 둘렀고 종선 씨는 평생 설거지를 담당하기로 약속한 좋은 남편이며, 큰 딸은 금속 디자이너, 작은딸은 엄마의 뒤를 이어 교육행정직 공무원 반열에 들어있다. "새해 첫날에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친정아버지 친정어머니 영면해 계신 곳에 다녀왔습니다. 생전에 저를 무척 아껴 주셨던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제가 아무 탈 없이 40년 공직생활을 마칠 수 있도록 격려와 사랑을 듬뿍 주신 분들이거든요."  2020년 아지오 저널 새해 첫 주인공 오문순(59세) 전 경기도교육청 교육협력국장과 마주 앉았다. 손수 농사지은 고구마, 옥수수, 땅콩을 나눠 먹으며 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든든하게 문순 씨를 지켜 준 그의 남편 종선 씨도 자리를 함께 했다. 구김과 아픔이 드러나지 않고 진한 참기름 향이 가득이어서 그 비결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달착지근한 호박고구마 맛과 찰진 옥수수 맛도 보고 고소한 땅콩의 맛을 얻고 싶어서였다. 친구처럼 편한 아지오와 함께 문순 씨의 행복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한다. - 오문순씨의 행복 이야기를 들으며 강산이 네 번 변하는 동안에...   1979년에 경기도 여주교육청 5급 을(지금의 9급) 공무원으로 사회 첫 발을 내딛은 문순 씨의 어릴 적 꿈은 교사였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계속할 수 없어 그 꿈을 접고 친척의 권유로 교육행정직 공무원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딱 5년만 하고 결혼하여 가정주부로 살아갈 생각이었는데 경력과 보람이 늘고 사명감이 차오르며 적극성이 솟아올라 뜻을 바꾸어 40년 세월을 걸어 멋지게 마침표를 찍는 기쁨을 얻었다. 그 사이에 문순 씨를 끔찍이 사랑해 주는 남편 종선 씨를 만났고 워킹맘으로 두 딸을 예쁘게 잘 키워냈으며 경기도교육청 여성공무원 최초로 9급에서 출발하여 3급 부이사관까지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교육협력국장실에서의 오문순씨​ "공직 40년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이 육아였습니다. 짧은 출산 휴가를 마치면 아이를 어쩔 수 없이 남의 손에 맡겨야 했어요.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이 많았지요. 그래도 다행인 건 아이를 돌봐 주는 분들이 하나같이 좋아서 두 딸들이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랐답니다. 녀석들은 친엄마는 오문순 엄마, 그분들은 ○○○ 엄마로 불렀으며 지금도 여전히 잘 따른답니다." 문순 씨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챙겨 주는 선배, 따르는 후배, 때 맞춰 지혜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늘 곁에 있다. 그야말로 인복이 남다르다. 그 복이 저절로 찾아와 준 게 아니라고 문순 씨는 말한다. "저의 투철한 신념 하나는 남편이나 아이들은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이르기까지 절대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경청하면서 조금이라도 긍정을 공급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어찌 보면 쉬울 거 같지만 평소 배려와 존중의 마음이 없으면 결코 지키기 어려운 신념일 것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갈등과 분쟁을 겪지 않고 목표를 이루는 경우는 없다. 문순 씨의 인복은 경청과 존중으로 다져진 긍정 덩어리로 자기 관리와 능력 발휘에 그 힘이 적절히 작용해서 최선을 다하여 일해 왔기에 모두가 좋아하는 고위 공직자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남편과 딸들도 그런 아내와 엄마를 무척 좋아하고 돌아가신 양가 부모님들도 문순 씨를 깊이 신뢰했다. 그의 걸어온 길이 복된 작품이었고 그의 가정이 고급스런 행복이었다. 경기도교육청 오문순 교육협력국장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강산이 네 번 변한 게 아니라 문순씨로 인하여 강산이 멋지고 푸르게 네 번 변한 것이다. - 정들었던 경기도교육청에서의 마지막 근무 날 아내 오문순, 엄마 오문순 그리고 자유로운 오문순!  가족들이 가족을 칭찬하거나 존경하는 예는 그리 많지 않다. 그냥 데면데면하거나 불신과 상처가 행복을 가로막기도 하고 갈등이 고조되어 해체되는 가정이 갈수록 늘어간다. 하지만 문순 씨의 가정은 많이 다르다. 남편 종선 씨가 아내를 고마워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딸들도 부모님들을 존중하며 밝게 생활한다. "저희 집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밥을 함께 먹습니다. 벌써 35년째 하루도 빼놓지 않고 늘 함께 아침밥을 먹습니다. 밥상머리에서 그 날의 일을 얘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살피지요." 남편 종선 씨의 제안으로 시작된 아침밥 문화가 그 가정을 행복한 공동체로 승화시킨 것이다. "저희 두 딸들이 시집가면 엄마처럼 꼭 아침밥을 정성으로 준비하는 아내가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도 하고 남들에게 자랑도 한답니다." 문순 씨의 집에서 진한 참기름 냄새가 나는 이유를 그 대목에서 찾았다. 가족들이 잠깐은 아침밥을 함께 먹을 수는 있어도 매일 그렇게 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말이 아닌 실천으로 온 가족이 서로를 존중하며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킨 까닭으로 사랑의 전류가 끊임없이 흘러 칭찬과 존중이 생성되고 있었다.​​- 직접 기르고 만든 음식으로 손수 다과를 준비하는 문순씨​ 또한 남편 종선 씨는 그 아내를 효부라고 자랑한다. 시아버지가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반찬을 준비하여 찾아뵙는 일을 하면서 효를 다했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직위가 높아지면 그만큼 책임도 무거워지는데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마음을 다해 시아버지를 봉양했다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퇴직 후에 다시 뭔가를 계획하여 시작하려고 하지만 저는 남편과 함께 남미로 여행을 하며 여유로운 삶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그동안에는 남을 위해서 일했지만 이제부터는 저 자신이 자유롭게 스스로를 북돋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문순 씨의 인생 전반전이 분주하고 치열했다면 이모작 인생은 자유로움 속에서 낭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의 인생 후반전에도 역시 가족이 중심에 들어 있다. ​​- 아지오를 신은 문순씨 부부​ "저는 아지오가 더 많이 알려 지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아지오를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저도 아지오 홍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문순 씨와 남편 종선 씨는 아지오 구두 한 켤레씩을 갖고 있다. 청각장애인들의 일터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열망이 이들 부부에게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행복한 가정에서 우리 아지오를 뜨겁게 응원하고 있어 분명히 구두만드는풍경의 미래는 큼직한 성공의 열매를 거두리라 확신한다.아내 오문순! 엄마 오문순! 그리고 자유로운 오문순! 단란한 그 가정에 사랑이 영원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오문순 / 전) 경기도교육청 교육협력국장 / 2020.1.10.
바다와 사람이 아름다운 여수에서...
바다와 사람이 아름다운 여수에서...아지오 조합원, 송정인더스트리 김영화 원장과의 겨울 데이트 나폴리가 더 아름답다구요? 버스커 버스커 장범준은 '여수 밤바다' 노래로 여수를 쓰다듬었다. 가사에 풍광을 조목조목 담지는 않았어도 사람들은 이미 그 곡조에 이끌려 여수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그려 넣는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곡선은 이탈리아 나폴리의 단조로운 모습에 비교하기 싫을 만큼 매혹적이며 오동도, 향일암, 진남관 등을 포함하는 여수 10미(味) 10경(景)은 돌산 갓김치와 함께 우리나라의 귀한 문화적 자산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왜 버스커 버스커는 해 있을 때에도 아름다운 여수를 밤바다만 걷고 싶다고 말했는지 궁금하다.옥빛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365개의 섬은 카메라로 표현하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영취산 진달래와 검은 모래로 유명한 만성리 해수욕장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망치와 정으로 뚫어낸 마래터널은 나폴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비경이다. 아마도 버스커 버스커는 돌산대교 위에서 지독스럽게 아름다운 야경에 빠져 여수를 온통 밤바다로 노래하지 않았나 여겨진다.거북선의 고향 여수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일일이 다 말하기에는 벅차서 딱 두 사람만 소개한다. 그 한 사람은 아지오라면 죽고 못 사는 여수종교문제연구소 신외식 소장이다. 구두만드는풍경의 소소한 일상에도 늘 SNS로 반응을 하면서 사방에 아지오 자랑을 늘어놓느라 여념이 없다. 언제라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기회를 이용하여 여수에서 아지오를 홍보 판매하자며 우리에게 힘을 많이 보태 주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또 한 사람은 오늘의 주인공으로, 장애인들과 함께 사무용품과 격조 높은 커튼을 제작하여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며 비즈니스에 열정을 쏟는 송정인더스트리의 김영화 원장이다. 사회적협동조합 구두만드는풍경 조합원 중 가장 먼 곳에 사는 사람으로 28년 동안 장애인들과 고락을 함께 해온 사회복지사이다. 김원장 이야기는 한 걸음 더 들어가 하기로 하고...누가 여수항을 동양의 나폴리라 했는지 그 진실이 알고 싶다. 한려수도와 다도해 해상공원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폴리를 '유럽의 여수항'이라 해야 할 말을 여수항을 동양의 나폴리로 잘못 표현한 것 같다. 지금이라도 사실을 바르게 일깨워 '여수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나폴리 시장에게 전해주었으면 한다. ​아름다운 여수장애인들과의 특별한 인연 김영화 원장은 여수에서 나고 자란 여수 사람이다. 부유하지 않은 가정의 8남매 중 넷째였지만 위로 누나 셋이 있어 장남이었다. 열두 살 많은 큰 누나가 어릴 적 높은데서 떨어져 뇌전증을 가진 장애인으로 집에서 보호를 받았고 김원장 역시 예비고사를 20일 앞두고 뜻하지 않은 중병을 얻어 상당한 시간 집에서 요양을 해야 했었다. 김원장의 어릴 적 꿈은 목사였다. 30대 초반 어느 정도 병을 치료한 후 신학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하며 짬짬이 광주 무진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당시 복지관장이 "목회 활동은 당신과 맞지 않으니 여수로 돌아가 장애인시설에서 일을 하면 잘 맞을 거 같다." 하여 그 길로 고향 여수로 돌아와 지금의 동백원에서 장애인들과의 삶을 시작했다. 월 43만원 박봉에 일은 많았지만 장애인들이 정말 순수했고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무려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복지현장을 지켜 왔다. 지금까지 알콩달콩 가정을 꾸려온 아내도 같은 곳에서 일하는 동료였다. 누나의 장애를 보며 자라온 김원장이 목회자가 아닌 사회복지사로 소명을 다할 수 있었던 점은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특별한 인연들이 선하게 이어진 결과로 보여진다."저에게는 딸이 셋 있는데 가능하면 자유로운 직업을 선택하라고 주문합니다. 치열하게 경쟁하거나 직업의 노예가 되지 말고 즐기며 여유를 통해 행복을 누리라고 얘기합니다."욕심보다는 가치를, 경쟁보다는 나눔을 중시 여기는 김원장에게서 사회복지사의 내음이 물씬 풍긴다. 1959년생 김영화 원장은 따뜻한 가슴으로 장애인복지현장을 지켜온 까닭에 본인 스스로는 물론 구순의 어머니에서부터 세 자녀에 이르기까지 충분하게 복을 누리는 가정으로 느껴져 참 좋아 보였다.  복사용지 제조현장을 둘러보는 김영화 원장비즈니스가 진정한 장애인복지라고 주장하는 김영화 원장 송정인더스트리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다. 노동시장에서 경쟁이 불리한 장애인들이 이 곳에 취업하여 정규직으로 일하거나 훈련생으로 참여하는 근로사업장이다. 지원부서 직원들을 합하여 총 50명이 일하는 중소기업이다. 연간 매출액은 20억 정도, 생산 제품은 사무용 복사용지와 문서보관함이 주된 품목이며 블라인드와 커튼도 오랫동안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왕성하게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을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라 정하여 부르라고 한다. 하지만 김원장은 '송정인더스트리'라는 이름에 맞게 기업 또는 산업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근로장애인이 아니라 사원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틀에 박힌 보호의 개념을 벗어나서 노동의 주체로 장애인의 신분을 인정해야 한다는 그 주장에 우리 아지오도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2014년 3월부터 3년간 김원장은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장을 맡아 줄곧 이 같은 주장을 펼쳐 왔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 비즈니스모델로 변화하여 전도가 유망한 기업으로 우뚝 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의 주장과 의지를 입증해주듯 사원들의 손놀림과 기계들이 회전하며 내는 소리가 큼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송정인더스트리 김영화 원장과 함께아지오를 향한 김원장의 잔소리 "모든 국민들이 아지오를 잘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벗어나세요. 대통령의 구두이며 모델들이 유명해서 잘 팔릴 거라는 생각은 버리세요. 날마다 무차별적으로 홍보하며 발이 닳도록 뛰어 다녀야 합니다."평소 길이 멀다는 이유로 총회에 자주 빠지는 조합원이라서 한껏 핀잔을 주려 했는데 오히려 쓰디쓴 충고를 듬뿍 받았다. 충고라기 보다는 김원장이 아지오에 대한 애정지수가 높아 대놓고 약이 되는 조언을 준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돈을 많이 써서라도 홍보에 집중하라는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떠한 이슈나 이벤트가 있을 때 잠깐 기억했던 일들이 조금 시간이 흐르면 금세 잊혀지기 십상이라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한 현상으로 아지오가 잊혀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김원장이 느슨해진 구두만드는풍경 심장부에 강한 어조로 자극을 준 것이다. 먼 길 달려와 야단 섞인 선물을 받으니 씁쓸하기도 했지만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저도 아지오의 발전을 위해 여수지역에 열심히 판매망을 펼치겠습니다. 봄 되면 장터를 마련해서 소비자들을 모으겠습니다."사회적협동조합으로 출발한 아지오 시즌2가 김영화 원장처럼 든든한 조합원이 있어 그 미래가 한층 더 밝다. 더군다나 아름다운 여수 사람들이 격조 높은 아지오를 신고 오동도와 밤바다를 걷는다면 연인들의 사랑, 친구들의 우정, 발이 건강한 여수 어르신이라는 소문이 글로벌하게 퍼져 나가리라 믿는다.겨울에도 포근한 여수에서 아지오의 2019년을 가다듬으며 다가오는 2020년 새해에 일어날 대박의 향연을 김영화 조합원과 함께 스케치해 본다.​ 
김영화 / 송정인더스트리 원장 /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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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지오가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