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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gio
아지오를 소개합니다.
Agio Journal
아지오를 신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구두와 함께 울고 웃었던 50년
구두와 함께 울고 웃었던 50년-아지오의 마이다스 손, 이기노 사원과의 데이트​  망치소리와 트로트  구두만드는풍경의 사원은 모두 19명이다. 생산을 담당하는 사원 13명과 경영과 마케팅을 지원하는 6명이 열심을 다해 일한다. 스무 살 숙녀에서 일흔둘의 어르신까지 사원들 세대의 폭이 넓고 개성과 취미도 매우 다양하다. 오롯이 구두 밖에 모르는 안승문 공장장, 평소에 조용하다가도 이따금씩 버럭하는 전경수 공장장, 일찍 출근해서 궂은 일 도맡아 주는 이용만 반장, 60대 소녀 이정숙님, 엷은 미소로 마음을 보여 주는 김상진님, 말이 빠르고 몸이 앞서는 임택운님...   생산 현장에 들어서면 독특한 가죽 내음, 모양이 제각각인 발틀, 공정에 따라 놓여진 장비와 재료들, 우아한 곡선과 맵시가 아름다운 아지오 구두 여러 켤레가 부지런한 손끝에서 완성되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정해숙님의 환한 인사가 반갑고, 김영길님, 조순옥님, 전수연님의 능숙한 포장 솜씨와 10층 현장에서 5층 창고를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내리는 윤석구님, 고객관리와 상품 배송을 돕는 이상무님 그리고 사무실과 생산 현장을 바삐 드나드는 경영지원부 사람들까지, 매일매일 활기와 분주함이 계속된다. 아침 회의시간은 모두 진지하지만 간식시간에는 만면에 화색이 돈다.    맞춤 수제화 아지오는 청각장애인의 사랑과 정성이 배합되어 만들어 진다. 먹는 음식이 손맛에 따라 차이가 나듯, 구두 역시 손맛이 매우 중요하다. 손으로 말하고 손으로 일하는 청각장애인들의 손맛은 좋은 구두를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장점을 가졌다. 그래서 아지오 구두가 편하고 품질이 좋기로 널리 알려진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시나요?  아침 8시 50분에 시작된 회의가 끝나면 생산 현장의 망치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따금씩 공장장의 말소리가 들려올 뿐 청각장애사원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일도 손으로 하지만 수다를 떨 때도 손으로 한다. 그런데 오전 11시가 다 될 무렵, 트로트 노래가 망치소리에 섞여 들려오기 시작한다. 분명히 청각장애사원들이 일하는 아지오 생산현장에서 나는 소리다. 살며시 다가가 귀 기울여 보니 우리 회사 최고령의 이기노님이 볼륨을 높여 놓은 트로트 음반이었다. 본인의 집안에 작은 시설을 갖추고 반주를 다운 받아 자기가 직접 노래를 불러 제작한 음반이었다. 기성 가수 못지않게 수준 높은 노래 실력을 가진 그가 왜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청각장애인들의 일터에서 트로트 노래를 들으며 아지오 구두를 만들고 있는 이기노님의 신상을 탈탈 털어 보기로 했다.시계를 72년 전으로 돌려서...  이기노님은 세는 나이로 72세다. 하지만 그의 나이는 만나는 사람과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어느 때는 73세, 우리 동료들과의 자리에서는 72세, 안승문 공장장은, " 형 나이가 74세 맞지?" 라고 한다. 탄력이 좋은 고무줄로 나이를 동여 맺는지...  1948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으로 전북 정읍으로 피난하여 성장한 그는 여섯 살 무렵 친구들과 놀다 넘어져 왼쪽 고관절을 심하게 다치고 만다. 당시 병원이 흔치 않아 무자격 접골원에서 비과학적인 시술을 받다 1차 피해를 입었고 한의원에서 굵은 침을 잘못 맞아 좌골신경 손상으로 2차 피해를 당해 지팡이 없이는 걷기 어려운 장애를 갖게 되었다. 가난한 집안 살림이라 더 이상 어찌 하지 못하고 양 손에 지팡이를 짚어가며 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지독한 가난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서 큰아들인 그가 장애를 가졌지만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이기노님은 곧바로 혼자 서울로 올라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노점상과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아 2년 후에 고향에 있던 가족들을 서울 금호동으로 불러 올렸다. 막노동을 하던 그의 아버지가 장애를 가진 아들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다져 주기 위해 추천한 분야가 구두 만드는 기술이었다. 조금 규모가 있는 양화점에서 장인에게 풀칠하는 법으로부터 숙련된 기술을 익힐 때까지 약 3년간 용돈 수준의 급여를 받아가며 과정을 통과하여 견습생 딱지를 떼게 되었다. 그 후 서울 성수동 노룬산 시장에 있던 양화점에 취업하여 짭짤하게 돈을 벌었고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에, 미싱사로 일하던 여섯 살 연하의 직장 동료에게 끈질기게 구애하여 처가의 극렬한 반대의 벽을 뛰어 넘으며 결혼에도 성공하였다.   1969년, 성남에 둥지를 틀고 부지런히 재산을 불리며 아들도 낳고 양화점도 아내와 함께 경영했다. 그러는 동안 대형 구두 메이커들이 터무니없이 싼 가격으로 시중에 상품을 내 놓으면서 사업이 위축되어 결국 21년 고락을 같이 했던 양화점 문을 닫아야만 했다. 뒤이어 도급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 취업하여 다시 일을 하다가 약간의 공백기를 지나 우리 안승문 공장장과의 오래된 인연으로 2018년 1월에 구두만드는풍경 최고령 사원으로 입사하여 청각장애인들과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50년 숙성된 기술과 재능을 청각장애사원들과 나누어 가지며 매우 즐겁게 아지오구두를 만들고 있다. 젊디젊은 마음으로...  이기노님이 트로트를 부르는 까닭은...?  그의 목소리는 나이에 비해 미성이다. 반주에 맞춰 부르는 그의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청순함과 흥겨움이 그대로 느껴진다. 좀 더 심취해 보면 아픔과 고생이 들어있고 견딤과 기쁨도 가슴에 와 닿는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설상가상으로 떠안은 장애, 그로 인한 친구들의 놀림들... 괴로움이 적지 않아 좌절과 포기 사이에서의 갈등이 많았으리라. 그래도 그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했고 스스로 노력하여 지팡이를 버리고 혼자 걷는 투지를 보였다. 구두쟁이의 삶에서도 부지런함과 열정으로 양화점 사장의 위치를 지켰다. 하지만 또 다른 시련의 그림자는 오랜 시간 그와 그 아내를 짓눌렀다. 건강하게 군 생활을 하던 큰 아들이 선임병의 위협과 폭행의 충격으로 우울증, 조현병, 당뇨 등의 합병증으로 20년 넘게 투병생활을 했고 그 자식을 뒷바라지 하느라 청춘이 새까맣게 타 버렸다. 3년 전에 그 아들을 앞세워 천국으로 보내고 지금은 아내와 작은 아들을 알뜰히 살뜰히 챙기며 소확행을 누린다. 주말에는 연로하신 처 고모를 보살피는 일과 아내와 맛집 기행을 하며 정을 나누고 알콩달콩 행복을 만들어 간다. 이기노님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있다. 어린 시절 멋모르고 장애인이라 놀려대던  초등학교 동창생들과의 기분 좋은 모임이다. 남자 40명, 여자 18명 동창들이 전세버스를 타고 여행도 가고 색다른 모임을 가지면서 우정을 나누는 일이다. 서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가 트로트를 부르는 까닭은 노래로 인생을 찬찬히 추억하고픈 마음일 것이다. 고생과 아픔도 네 박자에 싣고 기쁨과 행복은 흔들고 잘 꺾어 환하게 마이크에 담아 크게 확성해 보려는 바람이라 여겨진다. 벌써 300곡에 가까운 트롯트 곡을 연습하고 다듬어서 음반에 실어 놓았다고 한다. 이 노래들이 아지오 구두 한 켤레 한 켤레에 베어 들어 고객들의 걸음과 함께 하리라 믿는다.  구두와 웃고 구두와 울었던 50년  1970년대 말에 있었던 일이다. 이기노님이 사업장 이름을 '허리우드양화점'으로 간판을 걸고 영업을 했는데 당시 우리말 쓰기 운동을 장려하던 학교 선생님과 아이들이 찾아 왔었다. 그 이유는 '허리우드'라는 말이 외래어이므로 우리말로 바꾸기를 권하기 위해서였다. 간판을 새로 하면 돈이 쏠쏠하게 들을 거 같아 이렇게 둘러댔다고 한다. "소의 가죽 중에 허리부분이 제일 좋아서 소 우자를 뒤에 붙여 허리우드로 지었다."라고 변명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유명 구두회사 명칭으로 간판을 걸었다가 명의 도용으로 개선명령을 받자, 역시 간판 설치비용이 아까워 '강'자를 '광'자로 살짝 고쳐 무사히 넘어간 일도 있었다. 재치와 익살이 철철 넘치기도 하는 이기노 사원!  구두만드는풍경에서의 이기노사원은 청각장애 사원들에게 구두의 기초를 가르치는 스승의 역할과 중요한 지점에서 경험적 지식을 제공하는 보험회사의 기능을 한다. 처음에는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많이 당황하는 모습을 왕왕 보았는데 이제는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사원들을 다독이며 재미있게 작업을 한다. 청각장애 사원들도 그를 잘 따르며 이렇게 저렇게 아버지를 받드는 심정으로 챙기며 호흡을 맞춘다. 구두와 함께 웃고 구두와 함께 울었던 기노 사원의 삶이 생산현장 곳곳에 묻어 있다. 무관심한 듯 하면서도, 걱정하고 야단치는 듯 하면서도 정을 주는 느낌이 전류가 되어 흐른다.   아직도 아지오가 넘어야 할 산은 높고 가야 할 길이 멀다. 방법과 비용만으로 다 해결할 수 없고 자본과 아이디어만으로도 냉혹한 시장을 이겨내기 어렵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과 고객들의 소중한 요구를 읽을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지혜가 더 많아야 한다. 하루하루 노력하고 끊임없이 성찰하며 백년을 이어갈 내공을 쌓아 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아지오는 50년 이기노 사원의 기술과 경험과 지혜를 무척 존중한다. 눈물과 웃음도 빌려 쓰고 익살과 재치도 응용하며 친구처럼 편한 구두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청각장애인들의 행복한 내일이고 고객들의 건강과 성공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기노 장인님, 앞으로 쭈욱 아지오와 함께...!​ 
이기노 / 구두장인 / 2019.10.10.
아지오저널 발행일 변경안내
 
아지오 / 아지오 / 09.30.2019
춘천의 9월 그리고 순임씨의 가을
춘천의 9월 그리고 순임씨의 가을-찻잔에 아량을 담아 마음을 나누며 사는 정순임씨와의 데이트  한옥에 사는 순임씨 춘천시 교동 오르막에 들어앉은 아담한 기와집이 순임씨가 가을 꿈을 꾸는 보금자리다. '선운당, 운여월'이라는 문패가 붙은 나무 대문을 지나면 잔디 마당가에 각양의 화초와 식물들이 가지런하고 오는 9월이 부끄러웠는지 가지에 매달린 사과 몇 알이 얼굴을 붉히고 있다.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기역자로 자리 잡은 한옥이 참 좋아 보인다.▲ 춘천시 교동의 정순임씨 집_나무대목을 지나 ㄱ자로 자리잡은 한옥 "올가을은 제 삶에 있어 의미가 남다르답니다. 제 나이가 육십이니까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거죠." 순임씨가 귀히 여기는 차를 정성으로 우려내며 작은 찻잔에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로 담아 우리에게 건넨다. "제 어릴적 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어요. 하지만..."   경기도의 끝 강원도의 시작점인 춘천 경강마을에서 2남 3녀 중 맏딸로 태어난 그는, 열세 살 때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그 꿈을 접어야 했다. 어머니 혼자 꾸려가는 가난한 살림이기에 공부를 더할 엄두를 못 냈고 일찍 공장에 취업하여 돈을 벌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큰 탓에 갈등이 많았으나 진한 신앙심으로 이겨 나갔다. 그 와중에 순임씨의 인생 항로에 변곡점이 나타났다. 어느 젊은 신학생이 전보와 편지 공세를 퍼부으며 순임씨를 신부 삼기 위해 적극적으로 구애를 해온 것이다. 철몰라 흔들리던 소녀에게 이런 상황은 마치 숙명처럼 느껴져 남자가 좋아한다면 당연히 그 뜻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임씨는 열아홉 살 10월 28일에 때 이른 결혼을 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사랑보다 아픔이 먼저였고 바라던 행복은 혹독한 고생으로 다가와 마음에 상처를 가져다 주었다. "저의 결혼생활은 가난과 비극의 연속이었어요. 아이를 둘 낳아 기르며 계속되는 배고픈 나날도 힘겨웠지만 가정에 충실하지 않고 다른 데에 마음을 둔 남편 때문에 한숨과 눈물이 끊이지 않았어요." 결국 순임씨는 무책임하게 가정을 버린 남편과의 13년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선물처럼 잘 커준 아이 둘과 서울 어느 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 가게 된다. 낮은 목소리로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와 비우면 다시 채워지는 찻잔 속에서 그 시절의 아픔들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푸른 계절에 일구어 얻은 보물들 순임씨 인생의 봄날은 가난과 아픔 그리고 고생이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견디고 해쳐서 나이 서른넷에 남편을 떨쳐 버리고 아이들과 또 다른 삶을 열 수 있었던 그에게는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맞이한 인생의 여름 이야기를 더 들어 보기로 한다.  "친정 엄마에게 2백만원을 빌려 아이들과 서울 살림을 시작했어요. 한 부모 가정이어서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는 조리사 훈련을 받을 수 있었고 남달리 좋은 기회를 얻어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에 청와대로 들어가 식당에서 일하는 기능직 공무원이 되었답니다. 고정급도 받고 임대 주택에도 입주하면서 훨씬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초등학교 6학년 딸이 탁구 국가대표가 되어 전국 대회를 휩쓸면서 덩달아 저도 대표 선수의 대우를 받는 호사를 누렸답니다." 순임씨의 지나간 봄이 눈물로 씨앗을 뿌리는 시기였다면 인생의 여름은 행복이 무성한 푸른 계절이었다. 그래서 순임씨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한적십자사가 운영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봉사활동에 참여하여 열심히 시간과 목소리를 나누어 가졌으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 많은 시각장애인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선하게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을 다 키워 놓고 마흔일곱 살에 신촌에 있는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중학 과정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여서 그런지 매일 매일이 즐거웠고 얻는 지식이 늘 새로웠습니다." 만학이었지만 설렘과 열정이 가슴 가득이어서 무려 11년에 걸쳐 대학 과정까지 멋지게 마쳤고 한자 1급 자격 취득을 넘어 문예지에 등단과 더불어 시 낭송가 활동까지 순임씨의 삶은 긍지와 보람이 주렁주렁 황금빛 열매로 장식 되었다.   ​더 근사한 이슈는 친구의 중매로 교육청 장학사로 재직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고향 춘천에 한옥을 마련하여 알콩달콩 정을 나누고 있는 풍경이다. 그야말로 인생의 푸른 계절에 온갖 보물을 소유한 큰 부자가 바로 정순임이라 여겨진다.▲ 정순임씨 마당에 자리한 사과나무와 배나무, 그리고 여러 화초들  수녀화를 건강화, 효도화라 부르면 더 좋을 텐데...  ​순임씨와 아지오의 관계는 특별하다. 구두만드는풍경의 시작이 파주였고 순임씨도 파주에 살고 있었다. 그의 장애인 사랑은 남달라서 꼭 필요할 때 조용히 힘을 보태 주면서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응원했다. 구두만드는풍경의 첫 작품은 수녀화였다. 청각장애인들과 함께 회사를 창업하자마자 충남 공주의 어느 수녀원에서 첫 주문자로 나서 주었다. 수녀들이 많이 걷고 오래 서있기 때문에 가장 편하면서 가볍고 견고한 신발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었다. 얼핏 들으면 쉬운 요구로 들리지만 신생 회사의 첫 주문치고는 매우 어려운 요구였다. 우리 기술과 노력 그리고 정성을 모두 동원했지만 그 요구의 벽은 진짜 높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해서 다섯 번 퇴자를 맞고 천신만고 끝에 결국 수녀원에 300켤레를 납품하는데 성공했다. 이 일로 인해 우리의 기술력과 품질이 큰 발전을 얻는 계기가 되었으며 소비자의 눈높이를 읽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수녀원에서 지금의 아지오가 바로 서도록 정신적 스승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이 신발 제작에 자신을 얻은 우리는 전국의 수녀원을 대상으로 홍보 전략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임씨가 푸짐하게 간식을 사 들고 우리를 찾아와 진열되어 있는 수녀화를 발견하고 한번 신어 보더니, "이렇게 편한 신발을 제가 찾고 있었어요. 허리 수술을 해서 아무 신발이나 못 신거든요. 이 신발의 이름은 뭔가요?"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대답이 "수녀화입니다."라 하니, "이 신발을 수녀화라 말고 건강화 또는 효도화라 부르면 좋을 텐데..."​▲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아지오 시즌1 건강화를 신고 소양강을 찾은 정순임님​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바를 순임씨가 걸맞는 이름을 지어 판매아이디어로 제공해 준 것이다. 그 때부터 그 수녀화는 건강화 또는 효도화로 불리었고 아지오 시즌1에서 중년 여성들에게 각광을 받는 상품이 되었다. 2010년 봄에 흐뭇하게 건강화를 구매한 순임씨는 무려 9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신발을 애용하고 있다. 새로 장만한 'AG7004' 슬립온도 애지중지하며 열심히 춘천 사람들에게 자랑한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든든하고 고마운 응원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순임씨와 아지오는 복된 인연 아름다운 관계 특별한 이웃이다. 춘천의 9월 그리고 순임씨의 가을 해질 무렵 소양강 어귀에 깃든 가을을 본다. 물빛 하늘빛이 9월이다. 남춘천역에 내린 서울 손님들이 춘천의 가을을 얘기한다. 순임씨가 사는 기와집 마루에 벌써 늙은 호박 몇 덩이가 몸을 맞대고 있다. 화초와 나무들을 쓰다듬는 순임씨의 모습에서도 가을빛이 느껴진다.▲ 마루에 놓인 꽈리와 호박들, 꽈리를 만지고 있는 정순임님​​  "처음에는 잠을 자지 않으려고 차를 마시기 시작해서 지금은 한국차, 중국차, 꽃차를 공부하여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르치며 함께 차를 나누지요. 차에 어울릴 만한 한과와 떡이 필요해서 떡과 한과를 만드는 솜씨도 익혔어요." 차와 한과를 나누며 순임씨의 봄, 여름, 가을 인생 여정도 듣고... 그러다 보니 각박하고 치열한 세상사가 저만치 멀어지는 듯하다. "시를 쓰고 낭송하는 사람들이 우리 집 마당에 모여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지요. 그럴 때가 참 좋아요." 사람을 좋아하는 순임씨는 오늘도 값나가는 차와 고급스런 한과를 갖추어 놓는다. 누구라도 찾아오면 융숭하고 다정하게 아량을 담아 베풀고파서...▲​ 손수 준비한 다과상과 차를 우려 내는 정순임님​  춘천의 9월은 순임씨를 닮았고 순임씨의 가을은 춘천에서 행복하게 영글어 간다. 가을빛이 아름다우니 겨울이 와도 사랑이 따뜻하리라.  서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우리에게 순임씨가 스스로의 삶을 운유로 다듬은 시 한 편을 건넨다. 행복한 가을을 누리는 순임씨의 귀한 마음이기에 여러분과 더불어 음미하고자 한다.▲  환삼덩굴: 훼손된 들에 흔하게 자라는 덩굴성 한해살이 풀로 며느리 밑씻개 풀이라고도 한다. 잎 가장자리에 규칙적인 톱니가 있고 양면에 거친 털이 나 있다.▲ (좌) 정순임님의 환상덩굴 시화, (우) 유석영대표에게 환삼덩굴 시를 낭독하고 있는 정순임님                                                                                        
정순임 / 시와 차를 사랑하는 사람 / 20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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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지오가 찾아갑니다.